신문로
보수정치의 어두운 미래
보수정치가 잘돼야 나라가 안정적일 수 있다. 여기서 ‘잘된다’의 의미는 단지 높은 지지율 획득과 선거승리만이 아니다. 나라 전체 차원에서 공통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와 규범을 보유하고 이를 현실에 맞게 구현해가는 전략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과 진보의 급진성이 동반하는 오류가능성과 불안정성을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수용 가능한 방향과 범위 안에서 수정·보완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대표하는 작금의 한국 보수정치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논평할 가치가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정치와 국민의힘이 망가진 핵심적 이유를 꼽아볼 필요가 있다. 보수정치의 복원과 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정치와 국민의힘이 지금처럼 망가진 이유는 단지 윤석열정권의 실패 때문만이 아니다. 또 극우의존성이 심화되었다는 것 때문만도 아니다. 그런 진단은 대단히 현상적이고 표피적이다. 일제 식민지배-해방-분단-전쟁-산업화-민주화-사회양극화와 같은 거대 변동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한국 정치의 역사-구조적 특성을 고려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정권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고, 극우 의존성 역시 애초에 한국 보수정치가 내장해 온 특질이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정치 잘됨의 역사적 자원과 경험과 교훈을 망각할 수밖에 없다.
보수의 현주소는 한국 정치 구조의 산물
애초 한국의 보수정치는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극우반공독재국가에서 시작했다. 이승만정권 시기의 경찰독재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는 극우반공독재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억압적 국가권력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진보세력을 추방하고 절멸시켜야했고, 그래서 진보세력의 사회적 기반인 노동과 지식인 집단을 제거해야만 했다.
이런 극우반공독재국가의 성격을 약화·완화시킨 건 두가지 길을 통해서였다. 하나는 정치밖의 민주화 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민주화 운동의 정치적 일파였던 (김영삼) 세력의 보수정치 대표성 획득이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젊은이들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억압적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일파의 보수정치 대표성 획득은 극우반공독재에서 반공은 남겨놓되 극우와 독재의 기운을 빼내고 통치방식을 합리화하려는 정치실천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길은 1987년 6월항쟁에서 1991년 5월 투쟁에 걸친 ‘한국 민주주의 경계 설정의 시기’를 지나며 조기에 사라졌다. 외양적으로 억압적 국가권력의 행사주체였던 군부 세력의 주도분파가 온건파(노태우)로 교체되면서 대통령 직선제와 사상과 표현의 자유권 신장을 형식적으로 보장하는 지금의 1987년 헌정체제 수립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극우반공독재세력이 합법적·제도적 자격을 갖고 통치세력으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을 보유한 채 남아있을 수 있었다.
김영삼정권이 대표한 보수정치의 길은 극우독재의 기운을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통치집단에서 군부세력을 퇴출시켰고 군부에 의탁했던 민간 정치세력의 보수정치 주도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합리적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는 사회세력을 정치권에 들였다. 그 결과 나온 게 금융실명제같은 전향적 정책들이었다. 또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실행된 5.18광주학살 주범들의 내란죄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었다.
그러나 이 길은 IMF외환위기와 이회창 대표, 이명박정권 시기의 국민의힘 계열 정당(한나라당-새누리당)을 거치며 점차 약화되었고 박근혜정권의 몰락을 거치며 거의 사멸되었다. 그런 보수정치와 국민의힘이 선택한 게 극우반공독재 친화적이며 할 줄 아는 거라곤 정치적 경쟁자를 범죄집단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때려잡는 것밖에 없는 윤석열정권이었고, 김문수 대선후보 선출이었다.
합리적 개혁보수의 길 사멸돼 미래 더 어두워
보수정치의 미래는 현재보다 더 어둡다. 정치밖의 민주화 운동의 길은 사라졌고, 합리적·개혁적 보수의 길은 사멸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즉 보수정치가 잘되기를 압박하고 유도할 정치 안팎의 힘이 부재하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버리지 못하고 극우의존성을 키우는 길로 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보수정치를 대표하는 한 그 어둠은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