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중요사건 전담 수사체제 확충”
국가수사본부, 종합 로드맵 제시 … 광역수사단 확대, 산재 전담수사팀 설치
이재명정부의 검찰 수사·기소 분리 추진으로 경찰의 수사권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경찰이 수사 전문성과 공정성,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경찰은 중요 수사단서와 정보를 확보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중요 사건에 대해서는 시·도경찰청 수사부서에 전담 수사체제를 확충하기로 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5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수사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을 공개했다. 특히 경찰은 이를 위해 검찰의 일부 권한을 가져오는 법 개정도 추진한다.
◆법원에 잠정조치 직접청구 추진 = 먼저 경찰은 스토킹·가정폭력 등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임시·잠정조치와 관련해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임시·잠정조치는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이 이를 법원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검찰이 기각하면 청구 자체를 할 수 없다. 지난달 26일 경기 의정부에 스토킹 살인 사건의 경우 경찰이 잠정조치(접근·연락 금지)를 신청했지만 검찰이 기각한 사례다.
경찰은 경제·금융범죄 수사 확대 방안도 마련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서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 대신 사법경찰관에도 고발이 가능토록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한다. 통상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가 먼저 조사해 고발하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데, 경찰도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특정금융정보법을 개정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검경에 차등 제공하던 금융정보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동안 금융정보는 검찰에 우선 제공되고 경찰은 접근이 제한돼 금융 사건에서 중요 수사단서와 정보 확보가 쉽지 않았다는 게 경찰측 설명이다.
◆가상자산·다크웹 추적·분석 시스템 개발 = 이와 함께 수사 전문성 향상도 추진한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등 대형·중요 사건 등에 대해서는 수사 경험이 풍부한 시·도경찰청 수사부서에 전담 수사체제를 확충하고, 사안에 따라 총경·경정급도 실제 수사업무에 투입한다. 현재는 서울·경기남부경찰청에만 설치된 광역수사단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가상자산·다크웹 추적·분석 시스템도 개발해 신종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한다.
주요 민생범죄에 대해서는 전담 체계를 구축하는 등 대응체계를 강화한다. 우선 경찰은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무기한 연장하고 보이스피싱, 마약 등은 전 단계에 걸쳐 총력 대응한다.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산업재해 전담 수사팀’을 전국 시도청에 신설한다. 이에 따라 경찰청에는 전국 산재나 중대재해 사건 수사에 대한 수사지휘계를 설치하고, 전국 시도청 형사기동대에 전담 수사팀을 신설한다. 또 재난·안전사고 분야의 경력 채용을 확대한다. 특히 고용노동부·산업안전공단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전문 교육을 강화하고, 긴밀한 수사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산재 사망사고 근절을 위한 ‘전담 수사단 체계’를 구축해볼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격리 원칙을 강화, 잠정조치 중 위치추적 장치 부착, 유치장 유치 등을 적극 신청하기로 했다. 인력과 예산 등 인프라도 지속해서 확충한다. 민생범죄를 담당하는 현장 수사부서와 인력을 증원하고, 수사 활동 경비 관련 예산도 증액한다.
◆AI 수사지원시스템 도입 = 또한 경찰은 수사 공정성과 효율성 확보 방안도 제시됐다.
먼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수사지원시스템(KICS-AI)을 도입한다. 수사관들에게 수사 쟁점과 관련 판례 등을 제공하고, 영장 신청서 등 각종 수사서류 초안을 자동 생성해 수사 품질의 상향 평준화도 추진한다.
경찰은 또 자체 수집한 범죄 첩보에 대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할 경우 경찰서장 등 관서장의 승인을 받도록 경찰청 훈령을 개정한다. 기존에는 일선 경찰서 형사·수사과장 등 판단으로 초기에 사건이 종결돼 묻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수사 개시 단계의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수사절차도 개선한다. 피의자가 아닌 사건 관계인에 대한 원격화상 조사를 도입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수사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영상녹화·진술녹음 시스템 인프라를 확충한다.
특히 경찰은 부실·봐주기 수사 논란이 벌어지곤 했던 자체 수사 종결과 관련해 외부의 사후 평가를 강화하기위해 현재 서울변호사회가 주관하는 사법경찰관 평가를 전국으로 확대한다. 사법경찰관 평가는 변호사들이 자신이 맡은 사건 처리를 바탕으로 경찰관을 평가하는 제도다.
경찰 수사의 적정성과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경찰 수사심의위원회도 외부 위원 인력 자원을 늘려 공정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경찰은 2022년 67.7일까지 늘었던 평균 사건처리 기간을 2023년 63일, 2024년 56.2일, 올해 6월 기준 55.2일로 지속해서 단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경 수사권 개혁 초기 수사 부서 기피 현상이 문제가 됐지만, 최근에는 수사관 평균 수사 경력이 8.5년으로 2022년 7.4년과 비교해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수사의 전 과정을 재정비하고 역량을 한층 높여 국민에게 신뢰받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