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성 범죄’ 가해자, 10명 중 4명이 40~50대 중년층
젊어진 신체 나이, 중년층 교제 증가 등 원인 … 전체 범죄 증가, 강력사건도 이어져
#. 경찰은 지난달 21일 스토킹 혐의로 인한 집행유예 기간에 전 연인을 찾아가 살해하려 한 60대 남성 A씨를 구속 송치했다. 그는 지난달 12일 전 연인인 40대 여성 B씨 직장으로 흉기를 들고 찾아간 혐의를 받는다. A씨는 B씨의 직장 인근에서 잠복한 경찰에 체포됐는데, 당시 흉기와 제초제 등을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A씨는 B씨를 스토킹한 혐의로 202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검거 당시 집행유예 기간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B씨는 A씨가 여러 차례 살해하겠다고 협박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B씨에게 임시 숙소를 마련해주고 민간 경호원을 투입해 보호하는 한편 A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1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스토킹·교제범죄 등 중년 남성의 ‘관계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관계성 범죄는 평소 알고 지내온 이성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숨지거나 다치는 것을 의미한다.
조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 연구팀이 한국안전문화학회 ‘안전문화연구’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스토킹·가정폭력·교제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계성 범죄 가해자는 실제로 중년 남성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작년 9월 13일부터 10월 11일까지 약 4주간 서울·경기북부·경기남부·인천·대구 5개 시·도경찰청 관할 경찰서에서 112에 접수된 범죄 사건 5586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관계성 범죄의 가해자 연령대는 40대가 1218명(22.5%)으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1128명(20.8%)으로 뒤를 이었다. 50대는 1001명(18.5%), 60대 이상은 958명(17.7%), 20대는 842명(15.6%)이었다. 40~50대가 전체의 40% 이상이었다. 60대 초·중반까지 포함하면 중년의 비중은 절반 수준에 이른다. 스토킹 범죄만 한정해서 볼 때 가해자 평균 연령은 43.53세였다. 가해자를 성별로 보면 남성이 5537명 중 4055명으로 전체의 73.2%를 차지했다.
중년에 의한 관계성 범죄의 증가 원인으로는 남녀의 사회적 지위 변화와 과거에 비해 젊어진 신체 나이 등이 꼽힌다. 여기에 중년 사이에서 스토킹을 ‘열렬한 구애’로 보는 시각도 많다는 점도 관계성 범죄가 많은 이유로 꼽한다. 특히 초혼 연령이 올라가고 비혼 인구가 증가하는 등 중년층에서도 교제가 늘어나다 보니 결별 통보 등에 격분해서 저지르는 범죄가 많아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토킹 피해자, 하루 평균 35.8명 = 경찰 등에 따르면 관계성 범죄는 해마다 증가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는 △2021년 5만7305건 △2022년 7만790건 △2023년 7만 7150건을 기록하다 지난해 8만8394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또 스토킹 범죄 피해자 수는 △2022년 1만545명 △2023년 1만1841명 △2024년 1만3075명으로 증가했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35.8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실제 강력사건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2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30대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동거한 연인 사이였지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결국 범행으로 이어졌다. 28일에는 울산의 한 병원 주차장에서 20대 여성이 이별을 통보받아 화난 30대 남성에게 습격을 당해 크게 다쳤다. 26일에는 노인보호센터 직원인 50대 여성이 전 직장동료인 60대 남성에게 흉기로 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피의자는 범행 전 세 차례나 스토킹 혐의로 신고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처벌 원치 않아도 수사 착수 = 이런 가운데 교제폭력의 경우 현행법상 법적 보호근거가 부족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교제폭력의 경우 신고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이후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사례도 많다. 이 때문에 추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을 제작해 10일 현장에 배포했다.
경찰은 교제폭력 사건에 직권으로 개입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토킹처벌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등을 할 수 있는 스토킹처벌법을 활용해 현장 경찰관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 등 행위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이라 본다. 이런 행위가 지속·반복되면 스토킹범죄가 된다. 경찰은 이런 요건들을 검토해 교제폭력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교제폭력을 신고한 피해자가 이후 처벌을 원하지 않고 가해자와 교제 관계를 이어가더라도 사건 발생 시에는 폭행이 상대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벌어진 것이라고 봤다. 또 피해자가 폭행을 목적으로 한 접근을 허용한 것이 아니며, 불안과 공포를 느껴 신고했기 때문에 스토킹처벌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은 일회성 행위라도 지속·반복될 우려가 있다면 즉시 효력이 있는 접근금지 등 조치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결별요구·외도의심·결별 후 스토킹 등 상황에서 벌어진 교제폭력은 강력범죄의 전조 증상으로 판단해 초기부터 최고 수준의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겠다”며 “교제폭력을 규율하는 입법이 이뤄지기 전까지 이 매뉴얼을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