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본부장 “한미FTA 관리·발전시켜야”

2025-08-12 13:00:03 게재

보이지 않는 혜택있어 … ‘턴베리 체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강화될 듯

트럼프가 쏘아올린 보호무역주의가 기존 자유무역주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166개 회원국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국제경제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 기능이 위축되고, 자유무역협정(FTA)도 유명무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에 대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11일 “FTA 시대를 넘어 새로운 보호무역주의, 경제안보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FTA는 상품관세 측면에서 아직 유효하다. 서비스시장 개방, 한류수출, 투자자 및 지식재산권 보호 등 보이지 않는 혜택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FTA 발효된 지 올해 14년째인데, 10년 후에도 효력은 유지될 것”이라며 “향후 미국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우리가 계속 관리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프레임워크(framework)”라고 강조했다.

한미 FTA의 △차별대우 금지 △수입 쿼터·규제 완화 조항에 따라 한류 영화·드라마·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가 미국시장 내에서 수월하게 유통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상호 투자자보호로 인해 우리 기업은 대미 투자시 내국인과 차별없이 공정하게 대우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과정에도 FTA 파트너 국가에게는 미국 에너지부 심사과정이 간소화된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타결한 여러 합의는 모두 법적 구속력 없는(legally non-binding) 성격이지만 한미 FTA는 미국에서도 이행법(Implementing legislation)을 통해 국내법으로 제정된 협정이다.

따라서 한미 FTA에 따른 서비스시장 개방 등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효력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양국이 FTA 공동위원회 등 이행 채널을 통해 제도화된 소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의미있는 부분이다.

다만 시장과 기술을 무기로 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관세 등을 활용한 보호무역주의 추세는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미국내 일자리 감소, 제조업 리쇼어링 등 정치적인 요인까지 맞물려 있는 점은 불확실성을 키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1995년 WTO를 출범시킨 우루과이라운드의 대척점에 트럼프라운드가 있다’며 30년을 이어온 글로벌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을 선언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 경제 질서를 규정한 브레턴우즈 체제에 빗대 한국 일본 유럽연합(EU)과 체결한 무역합의를 턴베리 체제로 규정했다.

그는 “이제 WTO가 주도하는 세계 무역질서는 불가능하다”며 “양자 무역협상을 통해 15% 관세 부과와 대규모 대미 투자 등을 합의한 턴베리 체제가 WTO 중심의 다자무역 체제를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 본부장은 “8월 1일 상호관세 협상 데드라인 전후로 미국의 소비자 물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실업률 등 거시경제 지표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관세로 인해 우려가 컸던 인플레이션도 아직까지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다만 관세 영향이 시차를 두고 반영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연말 연초까지 미 경제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로서는 ‘턴베리 체제’가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향후 경제여건과 시장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여 본부장은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32차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 총회에 특별 연설자로 나와 한국의 중장기 통상 전략을 제안했다.

여 본부장은 “세계 통상환경이 구조적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면서 △경제 이슈의 안보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인공지능(AI)·디지털 기술 혁신 가속화를 3대 변화 흐름으로 꼽았다.

그는 “산업과 통상은 이제 따로 갈 수 없는 정책”이라며 “전략산업과 통상협상, 해외투자, 기술협력을 묶는 패키지형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미 FTA는 2011년 11월 22일 비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2012년 3월 15일 공식 발효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국 수출은 2011년 562억달러에서 1278억달러로, 수입은 446억달러에서 721억달러로 각각 증가했다.

한국의 대미국 투자는 2011년 74억달러(469건)에서 2024년 223억달러(687건)으로 늘었다. 같은기간 미국의 대한국 투자도 24억달러(306건)에서 2024년 52억달러(441건)으로 증가했지만 한국의 투자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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