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그린 모빌리티 외교의 거점 중남미 활용법

2025-08-22 13:00:01 게재

역사는 길목 장악 싸움이었다. 교통허브 차지가 목적이다. 실크로드 운하 등 지정학과 공급망도 같은 맥락이었다. ‘길을 지배하라’는 오래된 명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세력 간 충돌과 갈등은 당연하다. 육·해·공·우주 등도 있으니 어쩌면 다차원적이다.

교통은 욕망의 충돌 분야다. 인프라 프로젝트가 있는 곳에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땅따먹기, 기득권 수호가 부딪치므로 조정의 예술이 필요한 분야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마찬가지다. 기술격차에 따라 구파-신파 간 입장이 다르다. 내연차와 전기차 간 힘겨루기가 그런 예다. 그럼에도 국제개발협력(ODA)은 상대적으로 아름답다. 주변 4강 등에 기울어진 한국 외교의 민낯을 보완하는 다변화-전방위 외교 전략이기도 하다. 국가발전에 목마른 개발도상국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파라과이에서 한국산 친환경 전기버스 5대 인도식이 열렸다. ‘태스크(TASK) 그린 모빌리티 사업’(전기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산업협력 프로젝트)으로 현지 산업통상부장관은 직접 시운전까지 했다. 추가로 65대의 소형 전기차 전달도 추진중이다. 무엇보다 파라과이 기술자 40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금형 등 뿌리기술까지 전수해 주고 있고, 현지에 한국 전문가를 파견해 전기차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인력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기차 교통시스템 지원을 위한 TASK 센터 건립, 충전소 설치 등과 결합시키며 미래 모빌리티 산업 생태계 육성을 도모하는 것은 전략적이다. 파라과이는 전기버스 1000대 도입계획을 발표하고 배터리 등 인프라 확대와 기술도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파라과이, 그린 모빌리티 외교의 최적지

우리는 그린 모빌리티 외교의 최적지로 왜 파라과이를 선택했을까. 첫째, 남미의 심장으로 불리는 전략적 요충지(내륙국가), 둘째, 안정적인 정치환경과 개방적인 경제정책(중남미 비즈니스 환경 1위), 셋째, 풍부한 수자원과 저렴한 전력비용, 넷째, 마킬라(Maquila) 제도를 통해 외국 기업이 현지 생산한 제품을 거의 무관세로 제3국에 수출할 수 있는 구조, 다섯째, 메르코수르 및 미주대륙 전체 진출 교두보로서의 가치, 여섯째, K-콘텐츠와 한국차 선호(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 1위) 등을 꼽을 수 있다. 여러모로 파라과이는 우리의 중점협력대상국이다.

그중 거점화 로드맵 관련 전기차 생태계 조성 위치가 3개국(파라과이-브라질-아르헨티나) 접경 지역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이타이푸(Itaipu) 댐에서 나오는 수력자원을 기반으로 전기차 전환 여건이 유리하며, 7억 중남미 대륙으로의 연계·확장성도 모색할 수 있다. 실제로 자동차부품(wire harness)을 생산하는 모 한국기업은 현지인 약 1500명을 고용하며 마킬라 제도를 통해 브라질로 수출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성공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TASK 모빌리티 사업은 양국 간 산업-기술-경제-환경협력의 얼굴을 갖고 있다. 코이카도 대중교통 분야에서 아순시온 대중교통 현대화 사업을 지원 중이다. 교통분야 공적개발원조(ODA)이지만 우리 기업들에게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따라서 우리 중소기업들이 좁은 시장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활로를 찾고 도약하도록 경제 외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첫째, 현지 기업 및 정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이를 바탕으로 공동 R&D, 인력교류), 둘째, 가장 비즈니스 여건이 좋은 허브국가를 토대로 거대시장과의 접근성을 기획하며 조립(생산)-유통-서비스의 모델을 구축, 셋째, 대사관 코트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외교 일선에서의 기관 간 협업시스템을 강화해 현지 장벽 제거, 시장조사, 법률 자문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7억 중남미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 접근을

2024년 우리 ODA 지역별 실적에서 중남미는 7.7%를 차지했다. 독일 면적보다도 넓은 파라과이에서 한국형 그린 모빌리티가 뿌리를 내리고 미주 전역으로 확산된다면 기후행동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씨앗을 해외에서 발아시키는 구체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복합위기-메가 리스크 시대에 특정국가 특정지역에만 의존하는 협력 구조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외교도 비즈니스도 자산관리도 ‘다변화’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의 영역 아니겠는가. 하나의 중심이란 것은 없다. 중심은 도처에 있는 법이다. 유일하게 걸어가야 할 길이란 없다. 심지어 벽도 길이 되는 것이다.

역발상-다변화-위험분산, 그것이 강력한 혁신과 발전의 원동력이다. 우리 외교와 경제의 지평 확대를 위한 실천적 본보기로서 지구 반대쪽 중남미의 심장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라틴의 향기를 맡아야 할 때다.

윤찬식 전 파라과이·코스타리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