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행정통합, 수도권 구경만 할 일인가
결국 대구·경북 정치권도 두손을 들었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투표에서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정통합 특별법 통과에 찬성표를 던졌다. 정부와 여당 주도, 선거판의 일대 혼돈에도 불구하고 소멸위기에 놓인 지역의 미래를 방치해선 안된다는 주민들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광주·전남에 이어 대구·경북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선출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 주민 삶을 크게 바꿀 행정통합 논의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는 전혀 그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통합이 서울·경기·인천과는 무관하기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미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판국에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 모여 있는 수도권은 이렇게 조용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행정통합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수도권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어서다. 거대 지방자치단체의 탄생보다 우선하는 행정통합의 본질은 바로 행정혁신이기 때문이다.
행정통합 본질은 거대 지자체 탄생 아닌 '행정혁신'
지금 벌어지고 있는 행정통합은 단순히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 아니다. 주민 삶의 업그레이드를 목표로 행정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중복과 비효율을 줄이며 행정 서비스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게 본래 목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초광역 생활권이 이미 현실이 된 수도권이 통합 논의를 강건너 불구경 하듯 보고 있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거와 일자리, 낡은 인프라와 경직된 행정 서비스 문제가 여전히 촘촘히 엮여 있는 서울·경기·인천이야말로 행정혁신 경쟁의 한복판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만 해도 노후화에 따른 도시 재창조라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다시 지어진 서울의 도시 인프라들 나이는 벌써 일흔살을 넘어가고 있다. 상하수도관이 낡고, 가스관이 부식되고 이로 인해 한해 수백건씩 발생하는 지반침하 사고 등 모두 낡은 도시 문제와 관련돼 있다.
도시뿐 아니다. 사람도 늙어간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서울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기반시설 확충, 고령자 일자리 문제, 소외됐던 중장년 정책의 개발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도시의 대응 과제들을 나열하자면 열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방선거는 도시 혁신을 공론화할 절호의 기회다. 어떤 후보도 과거 회귀, 도시의 퇴행을 위해 경쟁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조기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전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재설계할지에 대한 치열한 혁신 논쟁 대신 ‘성수동을 누가 만들었느냐’는 식의 과거 공과 논쟁만 전면에 부각되고 있어서다. 물론 정책의 평가와 연속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비전보다 과거 성적표에 매달리는 정치가 시민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닌 ‘앞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혁신경쟁이다.
정치권이 진영으로 갈라져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좋아하는 싸움이 있다. 바로 ‘나’를 위한 싸움이다. 시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다툼, 도시의 미래를 앞당기기 위한 정책 대결이 그것이다. 진영과 여야가 아닌 ‘나를 위해’ ‘시민을 위해’ 싸울 때 정치 갈등은 소모전이 아닌 혁신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상대 후보나 그의 과거 모습만 두고 싸워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시민의 더 나은 삶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과 싸우는 후보를 만날 때 유권자들은 환호할 것이다.
수도권도 시민의 삶 위해 벽 허무는 협력 필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자체들의 미래를 둘러싼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인구구조 변화, 산업재편, 공간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행정이 선제적으로 혁신하지 못하면 도시의 활력도 빠르게 식을 수 있다. 서울·경기·인천에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이라는 형식 논쟁에 앞서, 시민 체감도를 높이는 실질적 행정혁신 로드맵이다. 교통·주거·환경·돌봄 등 생활밀착 영역에서 경계를 허무는 구체적 해법이 나와야 한다.
수도권 행정의 미래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각 지자체의 정체성과 권한은 존중하되 시민 삶과 직결된 영역에서는 과감히 벽을 허무는 실용적 협력이 필요하다. 행정이 현상 유지에 머무르는 순간 도시의 경쟁력은 급격히 정체되고 시민 삶의 개선은 그만큼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생존을 걸고 통합 논의를 벌이고 있는 이때 명색이 ‘수도권’이라는 서울·경기·인천에선 ‘혁신’에 대한 어떤 고민이 진행중인지 궁금하다.
이제형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