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부동산, 가격 아닌 출발선이 문제다
부동산 가격 논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가격조정 국면마다 기득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전세난·월세난 우려와 공급부족을 근거로 한 정책실패론이 반복된다. 그러나 지금 사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가격하락이 아니라 과도한 주거비가 만든 구조적 불평등이다.
핵심은 가격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주거비 상승으로 청년과 무주택자는 시장 진입이 어려워졌다. 자산 보유층은 가격방어를 요구하고 무주택자는 대출에 의존해 뒤늦게 진입한다. 이처럼 출발선이 다른 시장에서 가격논쟁만 반복하는 것은 본질을 비켜난다.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26.8에 달한다. 26.8년을 한푼도 안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20·30대 가구주의 자산 점유율은 약 10%대 초반인 반면 부채 점유율은 20% 안팎으로 나타났다. 집값 상승은 청년에게 빚, 기성세대에는 자산으로 작용했다. 한국은행 분석에서도 집값이 5% 오르면 50세 미만 후생은 0.23% 줄고 50세 이상 자산은 0.26% 늘어난다. 집값이 1% 상승할 때 25~39세 소비가 0.3% 감소한다. 최근 몇 년간 중장년은 고점 매도, 청년은 ‘영끌’ 매수로 손익이 세대 간 이전됐다.
정책 신뢰도는 낮다. 가격안정 약속은 시행령 단계에서 후퇴했고 선거 국면에서는 경기부양 논리에 밀렸다. 주거안정을 명분으로 사유재산을 수용했던 3기 신도시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계획 물량 약 30만호 가운데 착공·분양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 사이 토지가격 상승에 기대 건설사 이익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행력 부족이 정책 불신을 키웠다.
물론 중장기 신규 공급 확대는 필요하지만 가격방어를 목표로 하면 시장 이동성과 무주택 진입이 막힌다.
주거비 부담은 소비 감소와 자영업 매출 축소로 이어진다. 결혼 지연 이유 1위가 주거비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십조원의 저출산 예산도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주거문제는 교육·출산·내수와 연결된 복합 의제다.
전세난 우려의 상당 부분은 공급부족이 아니라 매물 보류와 가격 기대심리에서 비롯된다. 거래 위축을 곧바로 공급부족으로 보는 것은 진단 오류다. 정책 평가는 매물 잠김과 같은 단기 증상이 아니라 내집 마련 접근 가능성과 주거비 부담으로 해야 한다. 자가 점유율과 주거 이동성이 개선될 때 효과를 말할 수 있다. 가격방어는 미래 세대의 출발선을 늦출 뿐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자산가격을 지킬 것인가, 출발선을 복원할 것인가. 이제 공은 정부에 넘어갔다. 현 정부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고 했다. 과거 기대가 번번이 꺾인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도 다시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약속한 정책 일관성을 실행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