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정신지체장애인, 카페 사장님 됐어요
마포구 청사에 ‘누구나 카페’ 1호점
손님 응대부터 경영까지…자립 지원
‘박누리씨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구청 지하 1층. 이달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연 카페 개소식에 휠체어에 눕다시피 기대앉은 뇌병변장애인들이 손팻말을 들고 찾아왔다. 카페 공동 사장 네명 중 한명으로 새출발을 하는 박누리 대표를 응원하는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 종사자들이다. 박 대표는 앞으로 카페에서 배달과 수거 홍보를 맡는다. 국내 뇌병변장애인 가운데 첫 도전이다. 장기적으로는 향수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언니와 동업할 꿈을 키우고 있다.
22일 마포구에 따르면 구는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창업 지원형 카페를 조성했다. 구청 내 공무원들이 이용하던 식당 운영자가 맡아 하던 카페를 장애인 창업훈련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래서 일자리 참여자들 직함은 ‘대표’다. 4명 공동대표는 여느 카페와 달리 음료 제조만 맡는 게 아니라 고객 응대는 물론 회계관리까지 운영 전반에 걸친 경험을 쌓게 된다.
‘마포 누구나 카페’를 처음 구상한 건 박강수 구청장이다. 박 구청장은 “보호자 도움 없이 장애인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취직이 안되면 직접 경영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만 장사가 잘 되는 곳에 누구나 카페 1호점을 내고 싶었다. 박 구청장은 “구내식당과 연계한 카페 운영자에게 양보해달라고 부탁했는데 흔쾌히 응해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뇌병변장애인 박누리씨를 비롯해 지적장애 이민서·정신장애 이가희·지체장애 김장자씨 4명이 공동대표를 맡아 6개월간 누구나 카페 1호점을 꾸려가게 된다. 공동대표라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수익금을 나눠 갖는 형태다. 마포구장애인총연합회에서 카페 경영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 신청을 받아 장애 유형이 겹치지 않게 선정했다. 이지영 회장은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는 이도 음료 제조법을 배웠고 목소리를 높여 고객을 맞는 훈련을 해왔다”며 “장애인 가족과 근로지원인이 매니저로 공동대표들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보다 많은 주민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회차당 운영기한은 6개월로 정했다. 이후에 현 공동대표들은 창업이나 취업 등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누구나 카페 1호점은 또다른 유형의 장애인 주민들이 운영하게 된다.
누구나 카페 1호점은 이 과정을 통해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말 대신 사진과 그림 문자 등 보완대체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한 음료 주문은 기본이다. 배달을 맡은 박누리 대표를 위해서는 휠체어에 안정적으로 올려둘 수 있는 쟁반을 제작하는 중이다. 배달 중 흘리지 않도록 캔 음료처럼 만들어 배달하는 방식도 준비하고 있다. 이지영 회장은 “장애인 각각의 활동을 도울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거나 아예 새로운 업무 분야도 발굴하려고 한다”며 “유형이 다른 장애인도 함께 일한 적이 없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포구는 1호점에 이어 벌써 2호점도 구상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지역사회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카페를 이용하는 주민들은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구는 누구나 카페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장애인직업재활센터 장애인종합복지관 등 관련 기관과 협업체계도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창업 경험을 쌓고 자립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공간”이라며 “서비스가 다소 느릴 수 있지만 그 느림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