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트럼프 상견례’ 분위기 좋았지만 비용 계산 남아

2025-08-27 13:00:03 게재

이 대통령, 3박6일 미·일 순방 마무리

15% 관세 유지… 한·미동맹 확인

농축산물 개방·가스전 투자 요구 여전

이재명 대통령의 3박6일간의 미·일 순방에 대한 대체적 평가는 예상보다 무난하게 ‘트럼프 허들’을 넘었다는 것이다. 북미대화를 띄우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산 게 주효했다. 방미 전 방일이라는 전략적 카드도 일본과 미국이 모두 호응하며 한미일 3각 협력 체제가 더욱 공고화되는 효과를 봤다. 다만 통상·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은 찜찜한 부분이다. 이번엔 민감 주제를 건너뛰었지만 결국에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 과제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 서재필 기념관 방문 광복 80주년 무궁화 식재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서재필 기념관을 방문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념식수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궁화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이 대통령이 이번에 내놓은 ‘방미 전 방일’ 카드는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했다. 23일(이하 현지시간) 도쿄에서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언론발표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취임 후 최초의 양자 회담 방문지가 (일본이) 된 것은 수교 이후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다”면서 “일한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그와 같은 역사적 방문으로서 이 대통령을 모시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높게 평가했다.

미국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25일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한국과 일본을 다시 화해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며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고 한국은 좀 조심스러운 것 같다. 이 대통령께서 하실 말씀이 있느냐”고 직접 물었다.

이에 이 대통령은 “한미일 협력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면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한미일 협력을 매우 중시하고 계시기 때문에 미리 일본과 만나서 대통령께서 걱정하실 문제를 다 미리 정리했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이 대통령의 외교 구상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미국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 대통령의 ‘문제를 정리했다’는 화법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관세 문제로 미국에 공동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으로 묘사했다”며 해석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다음 카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트럼프 역할을 부각시킨 점이다.

이 대통령은 공개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남을 권하며 “저의 관여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이 문제를 풀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 이 대통령의 제안을 “슬기로운 제안”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정말 스마트한 사람”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김 위원장과 가졌던 두 차례 회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을 큰 업적으로 본다. 이 대통령의 ‘피스 메이커’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부심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를 언급하며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됐다면 재앙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환대에 힘입어 한미간 민감한 주제 중 상당수가 거론되지 않거나 미뤄진 채 방미 일정이 끝났다. 예를 들어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방위비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추가적 요구가 없어 일단 논의가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전력의 ‘전략적 유연화’과 관련해서도 미국측은 우리측이 제시한 ‘미래형 전략화’ 취지에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비 증액 문제는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제시하며 첨단 무기 구매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 외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발언에서 밝힌 알래스카 가스전 한일 합작 투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이 역시 공개 언급한 농축산물 추가 개방 등의 요구는 불씨가 남아있는 문제들이다.

일본 방문에 한정하면 17년 만에 양 정상의 공동 문서를 발표한 점이 눈에 띈다. 경제 협력에 이어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 분야 협력 의제를 발굴한 점도 성과다. 그러나 일본 측의 역사 인식 언급이 형식적인 데 그치면서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

결국 이번 순방은 이 대통령에게 예상 외 무난한 출발선이긴 했지만 또다른 시험대의 예고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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