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아프리카 영유권 분쟁, 서사하라의 나라 없는 설움
아프리카는 모두 몇개 나라일까. 아주 단순한 질문이지만 대답은 간단치 않다. 그 이유는 아프리카 식민지배 역사와 냉혹한 국제관계 현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엔 승인 아프리카 국가는 54개국이다. 이중 마지막 가입국 남수단은 20년의 내전 끝에 2011년 독립을 인정받아 193번째 유엔회원국이 되었다.
한편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지역공동체인 아프리카연맹(AU) 회원국은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SADR, 이하 서사하라)을 더해 모두 55개국이다. 서사하라 문제는 아프리카 식민지배 종식 후에도 아직까지 독립투쟁 중이다.
그 배경은 모로코와 이슬람의 오랜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세기경부터 이슬람교 세력 팽창으로 지브롤터 해협 너머 유럽의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던 베르베르족이 모로코의 조상이다. 긴 세월 모로코가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을 지배하는 동안 서사하라 사흐라위(Sahrawi)족도 암묵적 평화를 유지하며 모로코 남부지역에서 살아왔다.
19세기 제국주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위 22도를 기준으로 모로코 북부는 프랑스령, 남부는 스페인령으로 분할통치가 이루어지며 비극이 시작되었다. 1956년 프랑스령 모로코가 먼저 독립한 후 남부를 되찾기 위해 스페인을 압박했다. 1884년부터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남부는 1975년에야 비로소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임을 주장한 모로코와 식민종주국 스페인 간에 체결된 마드리드협약을 통해 영토가 모로코와 모리타니아에 배분되며 불행은 계속되었다. 마드리드 협약 체결 과정에서 서사하라는 완전히 배제됐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서사하라 독립전쟁
그 사이 사흐라위족이 결성한 폴리사리오전선(Polisario Front)은 접경국 알제리의 지원을 받아 무장세력화하면서 민족자결권과 독립을 선포하고 1976년 서사하라를 수립했다. 모리타니아는 서사하라의 격렬한 투쟁이 이어지자 1979년 자진 철수했고 이후 모로코는 서사하라에 자국민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모로코와 서사하라 간 접전으로 많은 사상자와 난민이 발생하자 1991년 휴전 중재에 나선 유엔은 서사하라 주민투표를 통한 독립 여부 결정 방안을 제시했다. 유엔이 서사하라 주민들의 자결권은 인정했지만 영유권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모로코는 조직적인 병합 전략을 이어나갔고 주민투표는 모로코의 반대와 국제사회의 무관심으로 여전히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연맹 창립멤버인 모로코는 1982년 서사하라의 아프리카연맹 가입에 반발해 탈퇴했다가 2017년 재가입했다. 서사하라의 무력투쟁을 지원하고 20만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한 알제리는 모로코와 적대관계가 되었다. 서사하라 난민들은 50년째 난민촌에서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2016년 알제리 틴두프지역 난민촌 방문 당시 모로코군의 서사하라 주둔을 ‘점령(occupation)’이라 지칭해 엄청난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난민인권과 주민투표 약속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지적한 반 유엔사무총장의 발언에 격노한 모로코정부의 항의로 유엔 서사하라총선지원단(MINURSO) 사무소가 폐쇄되고 직원 84명이 알제리로 피신했다.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는 수백만명이 유엔 규탄대회를 열었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발언이 매우 경솔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사하라가 다시 이슈화된 것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 주민들을 아프리카로 강제이주시키는 방안을 언급하면서다. 모로코(서사하라)나 소말리아(푼틀란드와 소말릴란드)가 거론되자 서방국가들은 물론이고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도 강력 항의하고 나섰다.
국제정치 냉혹한 현실 보여주는 시험장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표적 중동정책인 아랍-이스라엘 관계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의 틀 안에서 모로코가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미국은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했다. 지난해 말 모로코를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한다고 발표하자 알제리는 즉각 반발하며 프랑스 외교관 추방 등 외교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도 모로코 손을 들어주었다.
서사하라는 1982년 이래 아프리카연맹의 엄연한 회원국임에도 미국 프랑스 영국이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한 아이러니한 현실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국제사회의 참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정부도 중장기적으로 더욱 긴밀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아프리카에서 현재 진행 중인 서사하라 영유권 분쟁에 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