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사법개혁 방안으로서의 '대법관 증원안'

2025-09-01 13:00:02 게재

지난 5월 공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10점 만점에 3.8점이라고 한다. 3.2점을 받은 검찰이 최하위이고 바로 그 다음이 사법부다. 최근 여당이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의를 통해 5개의 사법개혁 어젠다를 제시했고 구체적인 법안을 논의 중이다.

필자는 이 중에서 ‘대법관 수 증원’이 가장 시급한 사법개혁 방안이라 믿는다. 얼마 전 대선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전격적인 전원합의체 파기판결 이후 대법관 증원논의에 불이 붙어 이 문제가 마치 정쟁의 대상인 것처럼 비춰지는 측면이 있지만 오해다. 대법관 증원 논의는 이미 이명박정부 때부터 학계나 변호사단체 및 사법 관련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온 사법개혁 방안이기 때문이다.

연간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수는 평균 4만건을 넘는다. 이 4만건이 넘는 사건들 중 극소수인 10여건의 사건들만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다루어지고 대부분의 사건은 4명의 대법관들로 구성된 3개의 소부재판에서 결론이 난다. 대법원장과 사법행정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법원행정처장인 대법관을 제외하면 대법원 재판은 실질적으로 대법관 12인이 담당한다.

대법원의 연간 사건수를 12인으로 나누어보면 대법관 1인당 연간 담당사건 수는 3000건을 훨씬 넘는다. 1년 365일을 휴일없이 일해도 대법관 1인당 하루에 10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이 숫자가 말하고 있는 바는 명확하지 않은가. 지금 대법원에서는 국민들의 인생이 걸린 한 사건 한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최종심 법원에 기대하는 충실한 심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민 기대하는 충실한 심리 이뤄지지 않아

현재는 대법관 수를 기존의 14명에서 30명으로 증원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올해 1년은 유예하고 내년부터 1년마다 4명씩 증원해 4년간 16명의 대법관을 증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법관 증원안에는 여러 반론들이 제기된다.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대법원 등을 보더라도 대법관 수를 현행보다 증원하는 것은 최고법원의 국제적 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 그 중 하나다.

모르는 소리다. 독일의 연방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일반법원의 재판관 수는 120명이고 프랑스의 대법원인 파기원의 재판관 수도 120명으로 같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우리처럼 정책적·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정책법원으로서의 헌법재판소가 대법원과 별도로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최고법원간 역할분담에 의해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은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대법원은 많은 대법관들로 구성해 다수의 상고심사건 해결에 치중하면서 소송당사자인 국민의 권리구제에 힘쓰는 권리구제형법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법원 이외에 헌법재판소가 따로 없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대법관 수를 우리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는 이유다.

대법관 수가 많아지면 전체 대법관이 모인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리기 어려워진다는 반론도 있다. 전원합의체를 한 개로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사건 영역별로 몇 개의 중합의체로 나눠서 운영할 수도 있다. 30명이면 15명씩 두 개의 중합의체를 운영하면 된다.

대법관 증원만으로는 대법원의 사건 적체를 해소할 수 없다며 ‘하급심 강화’가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반론도 들린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이명박정권 이후부터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대법원측의 일관된 논리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법원은 하급심 법관 수를 대폭 증원한다든가 경륜있는 시니어 법관들을 하급심 법원에 보내 하급심 판결의 승복율을 높이고 항소나 상고를 줄이는 ‘하급심 강화’의 노력을 별반 기울이지 않았다.

국민적 신뢰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

대법관 증원에 대해 법원 내부의 동의와 법원 외부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대법관 증원은 반드시 하급심 법관 증원 및 하급심 강화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니라 둘 다 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법관 증원을 비롯해 주권자인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화할 수 있는 방안들이 조속히 입법화돼 이번에는 꼭 사법개혁에서 큰 진전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