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가뭄은 기후재난”…재난사태 선포

2025-09-01 13:00:01 게재

대통령 지시, 자연재난으론 첫 선포

일상화된 ‘기후재난’ 미리 대비해야

강원도 강릉에 재난사태가 선포되고,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돼 전국에서 51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 가뭄으로 재난사태와 국가소방동원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릉시민들은 정부의 재난사태 선포에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면서도 장기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폭염 가뭄 등 일상화되고 있는 기후재난에 대비해 피해를 줄이려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홍제정수장 둘러싼 소방차들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민의 87%가 사용하는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홍제정수장에서 전국에서 달려 온 소방차들이 운반해 온 물을 쏟아붓고 있다. 이날 강릉시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계속된 가뭄으로 14.9%까지 뚝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 수도 계량기 75% 잠금 하는 강력한 제한급수가 시행되고 있다. 강릉 연합뉴스

1일 행정안전부와 강원도 등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를 기해 강릉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제36조에 따르면 행안부장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재난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이 경우 장관 및 지자체장은 재난경보 발령, 인력, 장비 및 물자 동원 등 응급조치와 재난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재난사태 선포는 피해가 발생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특별재난지역 선포와 달리 심각한 피해가 예상될 때 사전적으로 취하는 조치다.

앞서 2005년 5월 양양 산불, 2007년 12월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19년 4월 강원 동해안 산불, 2022년 3월 경북 울진·삼척 산불 등에 재난사태가 선포된 바 있다. 하지만 자연재난으로는 강릉이 처음이다. 이번 재난사태 선포는 선포 당일 이재명 대통령이 강릉시 가뭄현장을 찾아 가뭄피해 최소화를 위한 정부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라는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강릉가뭄 어느 정도 길래? = 강릉시의 최근 6개월 강수량은 평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강릉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지난달 19일 25% 이하로 떨어지자 강릉시는 이튿날부터 각 가정 계량기의 50%를 잠그는 제한급수를 실시했다. 그러나 제한급수에도 생활용수 사용량이 크게 줄지 않았고 가뭄이 계속되면서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지난달 29일 15.3%(평년 72.0%)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수율이 15% 미만으로 떨어지면 계량기의 75%를 잠그게 된다. 이미 일부 가구는 계량기의 75%를 잠그는 제한급수에 들어갔고 농업용수는 아예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식당 카페 펜션 등은 단축 영업을 하거나 문을 닫았고 절수 소식에 관광객 발길도 줄어 시민들의 생업까지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총력 지원에 나섰다. 인근 정수장 물을 군·소방 보유 물탱크 차량 등을 활용해 주요 상수원에 추가 급수하고 관련 설비도 추가 설치해 대체수원을 확보할 방침이다. 소방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 전국의 물탱크차 50대와 급배수지원차 1대를 지난달 31일 오전 9시 강릉 강북공설운동장에 집결시켜 본격적인 급수 지원활동을 벌였다.

◆인접 속초시 ‘지하댐’ 지어 가뭄 극복 =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돼 전국 소방차들이 급수 지원에 나섰지만 가뭄을 해갈할 비 소식은 없는 상태다. 1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겠지만 비가 필요한 강원 동해안에는 5㎜ 안팎의 적은 비만 올 것으로 예상됐다. 강원영동은 최소 9월 10일까지 비소식이 없다.

이번 강릉 가뭄은 대기가 스펀지처럼 수증기를 흡수해 나타나는 ‘돌발 가뭄’이다.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그나마 내린 비까지 증발해 심각한 가뭄 사태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폭염 가뭄 폭설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는 기후재난에 대비해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릉에 인접한 속초의 경우 지난 2018년 극심한 가뭄을 겪은 뒤 쌍천 지하댐을 짓기 시작해 2021년 완공했다. 속초 시민들이 석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63만톤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다.

강릉도 지난 2017년 1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눈·비가 내린 날이 4일에 불과해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일부 주민들은 이때부터 치수에 나섰다면 이번 같은 가뭄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강릉시도 현재 지하 저류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오는 2027년 완공 예정이다.

이와 관련 강릉시는 지난달 30일 이 대통령이 강릉시청에서 주재한 대책회의에서 “이미 공사 중인 지하저류댐 등 3년 전부터 가뭄에 대비해 왔으나 평년의 46% 수준의 역대급으로 부족한 강수량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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