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국회로 넘어간 이재명정부 첫 팽창예산
올해보다 8.1%나 크게 늘어난 728조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정부안은 재정수입이 올해보다 3.5% 증가에 그친 데 비해 지출은 8.1%(54조7000억원)나 대폭 늘어난 초대형 적자예산이자 팽창예산이다.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내년에만 110조원의 적자 국채가 추가 발행된다. 이에 따라 내년 국가 채무는 올해보다 113조원 늘어난 1415조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국민총생산(GDP)의 50%를 넘게 된다.
사상 처음으로 GDP 50% 넘는 초대형 적자예산
정부가 필요한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관세전쟁으로 인한 수출 감소와 내수경기 침체로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돼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특히 내년은 재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 투자는 시기를 놓치면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빚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재정이 적자를 내더라도 재정확대가 경제성장의 마중물이 돼 튼실한 열매를 맺으면 세수가 늘어나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도 이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신산업 육성 등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자칫 재정건전성 악화를 초래, 대외신인도가 하락하는가 하면 물가가 상승하는 등 오히려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문제는 대규모 재정적자가 내년 한 해에 그치지 않고 현 정부 임기 내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가 채무가 2029년 말에는 GDP의 58%인 1788조원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현 정부 임기 말이면 비기축통화국 재정건전성 바로미터인 ‘국가 채무 비율 60% 선’이 위태로워진다는 얘기다.
참여연대가 최근 리서치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특히 여당 지지층에서도 상당수가 나랏빚 증가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GDP 대비 국가 채무가 아직 안정적이나 저출생 고령화 등으로 너무 빨리 늘어나고 있어 그렇다.
부채를 늘리며 나라 살림을 할 때는 우선순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쓸 곳에 과감하게 쓰기 위해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정부는 27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하나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돈이 남아도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구조를 그대로 두는 등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한 예산과 직장인 밥값 지원 등 선심성 예산이 다수 눈에 띄기 때문이다. 재정만 확장한다고 경기가 살아나는 건 아니다.
올해 성장률이 두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고작 0.9%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이를 입증한다. 재정의 적재적소 집행과 병행해 과감한 구조개혁과 규제혁파가 있어야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당연히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국채가치 하락으로 금리가 오른다. 국가부채 증가는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대출 금리상승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2022년에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신용등급 압박 요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더구나 한국은 높은 수출 의존도로 대외 충격에 취약해 재정불안이 겹치면 외국인 자금 이탈과 환율 불안,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언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지 모른다. 게다가 2020년 18조원에 불과했던 국채 이자가 올해 30조원, 내년에는 36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확장재정에 대한 경고음인 국채이자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다른 곳에 쓸 재정편성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암과 같은 존재다.
재정의 적재적소 집행과 병행해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성장 잠재력 높여야
재정모범국이었던 프랑스는 최근 수년간의 재정적자 지속으로 국가채무가 GDP 대비 114%까지 빠르게 높아졌다. 이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고 신용등급 하락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가능성이 거론된다. 방만한 확장재정 편성으로 국가채무가 GDP의 230%가 넘은 일본은 재정 부족으로 ‘잃어버린 30년’을 겪은데 이어 최근에는 시중금리 상승으로 인한 국채이자 부담 증가로 허덕이고 있다.
재정지출은 한번 늘어나기 시작하면 줄이기가 무척 어렵다. 확장예산에 익숙해지는 순간 확장은 일상이 된다. 또한 금리가 조금만 올라가도 국채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납득 가능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