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동남아의 AI 허브 부상과 한국의 역할
동남아시아는 최근 몇년 간 빠른 디지털 전환과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전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전략적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주요국들이 정부 주도의 디지털 전략과 민간투자를 통해 인공지능(AI)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을 선택했다. 동남아시아가 글로벌 AI 허브로 급부상하는 배경에는 몇가지 핵심요인이 있다.
첫째, 약 6억7000만명의 인구를 기반으로 한 방대한 데이터 생성 환경이다.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청년층이 많아 디지털 혁신 수용성이 높고 중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주목받는다.
둘째, 저렴한 운영비용이다. 토지와 물, 전기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IT 기업들에게 매력적이다.
하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첫째, AI 분야 고급 인재가 여전히 부족하다. 데이터 보호와 윤리 면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 등 규제가 미비한 상황이다. 둘째, 국가 간 디지털 인프라 수준 차이가 존재한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는 AI 대규모 투자계획이 있지만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는 AI 생태계 조성이 안 되어 외국투자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동남아시아는 AI 기술의 실험실이자 시장으로서 매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글로벌 AI 혁신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한국 기술력과 동남아 잠재력이 합하면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KOICA)은 준정부기관으로서 선도적으로 AI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챗봇 등을 활용해 일상적인 업무를 효율화하는 것은 물론 국제회의 진행, 나아가 해외원조 사업의 추진과 관리에 이르기까지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관련 업무 전반에 AI 기술을 적용해 업무를 혁신하고자 한다.
ODA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증진을 목표로 제공하는 원조를 의미한다. 개발도상국 정부, 지역, 또는 국제기구에 제공되는 자금이나 기술협력을 포함한다.
한국의 반도체 클라우드 통신 AI알고리즘 등 고도화된 기술 기반 등 AI 기술력과 동남아의 인구 구조, 빠른 디지털화, 풍부한 데이터, 높은 수요 등 AI 응용에 최적화된 환경잠재력을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구체적인 개발협력 분야로는 코이카를 통한 아세안(ASEAN) 국가에서 AI 교육, 인프라 구축, 디지털 정부 구축 지원이 있다. 베트남 전자정부, 캄보디아 디지털 행정 협력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기술 이전 및 공동연구를 통한 AI 기반 헬스케어, 스마트시티, 농업 자동화 등 분야의 산학연 협력도 추진할 수 있다.
그동안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베트남과는 2022년 코이카와 함께 디지털 행정과 AI 헬스케어 협력을 추진했고 인도네시아와는 4차 산업혁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클라우드 및 스마트 시티 분야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싱가포르와는 AI 윤리 기준 논의 및 연구개발 협력을 진행하고 공동 스타트업 육성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캄보디아와 라오스에는 디지털 공공행정 구축을 위한 기초 인프라와 인재개발을 중점 지원했다.
동남아 국가들과 AI 분야 협력은 중국과 미국 중심 협력 구조에서 벗어난 신흥 디지털 파트너를 확보하는 등 외교다변화를 기할 수 있다. 글로벌 AI 생태계를 연계해 한국의 AI 기업과 동남아 시장 및 인재를 연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시장 확대 및 공동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동남아 국가별 맞춤형 협력 설계 필요
앞으로 동남아 각국의 국가별 AI 수준과 수요에 맞는 맞춤형 협력 설계와 차등형 접근이 필요하다. AI 인재 양성을 위한 IT 특성화 대학 설립, 단기 연수, 사이버대학 운영과 동남아-한국 AI 교육센터 구축이 시급하다. 네이버 KT LG 등 민간기업의 AI 연구소가 현지 스타트업 투자, 기술 파트너십을 추진하는 등 민간 투자를 연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AI 윤리와 규범 수립 지원을 강화해 지속가능한 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민관협력 모델을 확대해 기업과 정부, 학계의 유기적 협력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동남아의 AI 부상은 위기이자 기회다. 한국이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전 필리핀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