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강원철 동민산업협동조합 대표
“처치곤란 현수막을 새로운 순환경제 아이템으로”
수확 끝난 농촌 들판의 ‘공룡알’이 친환경 제품으로 탈바꿈 … 신재<재활용 원료가 아닌 새로 생산된 순수 원료> 수준의 재활용 품질 기준이 성공 핵심 재활용>
“곤포사일리지용 필름의 국내 도입 초기에는 수거도 제대로 안 되고 재활용도 어려웠습니다. 처리가 곤란해진 일부 농민들이 축사 뒤에서 밤에 몰래 태우다가 불이 나서 소들이 다 죽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었죠. 어렵긴 해도 한 번도 시장에 나온 적이 없는 제품들을 만드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낍니다.”
3일 경상북도 영천시 오계공단에서 만난 강원철 동민산업협동조합 대표는 인쇄기와 한창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생각만큼 인쇄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지 이리저리 비교를 해보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직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동민산업협동조합은 농촌에서 발생하는 곤포사일리지용 필름 폐기물 등을 재활용하는 업체다. 재활용 업체에서 현수막 인쇄품질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다니…. 의아해하는 기자의 질문에 강 대표는 “선거나 행사 등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현수막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방법을 찾고 있다”며 “난관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곤포사일리지용 필름은 사료용 볏짚 등을 압축·결속할 때 사용하는 비닐이다. 벼 등의 수확이 끝난 농촌 들녘에 마시멜로나 공룡알처럼 동그랗고 커다랗게 둘둘 말린 사료 더미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필름으로 감싼 것이다. 곤포사일리지용 필름은 2016년 1월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의무대상 품목으로 관리 중이다.
볏짚 냄새 제거 등 품질 혁신이 경쟁력
연간 매출액이 약 150억원인 동민산업협동조합은 농업용 비료포대와 곤포사일리지용 필름을 이용해 △하수도용 관 △각종 파이프 △농업용 비닐포대 △건축용 판넬 등의 원료가 되는 재생 폴리에틸렌(PE)칩을 생산한다.
동민산업협동조합이 생산하는 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LLDPE) 칩은 플라스틱의 기본 원재료인 PE의 한 종류다. △산업용 포장재 △식품 포장재 △타포린(돗자리 원단이라 불리는 방수원단) 코팅 등에 사용된다. 롯데 SK 한화 LG 등이 주요 고객사다. 중국 등 해외 수출도 한다.
동민산업협동조합은 고품질 재생 PE 원료로 만든 원단을 활용한 친환경 상품들도 개발 중이다. 동민사업협동조합의 판촉물 제작 브랜드인 ‘피크에코(PICKECO)’에서는 에코백 보냉백 바이크백 포켓파우치 테이블매트 등을 선보였다.
“처음부터 피크에코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재생 PE 원료를 가지고 원단을 만들었고 가방을 한번 만들어 볼까 해서 시도하게 됐죠. 우연히 한 고객사에서 재생 원단으로 만든 가방을 보시곤 창사기념으로 직원들에게 줄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요. 재미 삼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재생원료를 새활용하는 일도 의미가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보자 마음을 먹었죠.”
동민산업협동조합은 고품질 재생 PE 원료로 만든 원단으로 친환경 국제 재생표준인증인 GRS(Global Recycled Standard)를 획득했다. 한번 사용한 곤포사일리지용 필름을 재료로 만든 원단은 미세하지만 특유의 볏짚 냄새 같은 것이 나기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 회사 자체 연구소에서 정말 실험을 많이 했어요. 미세하더라도 행여 재생 원단에서 냄새가 나면 소비자들은 싫어하실 수 있잖아요. 계속 실패하니까 ‘누가 이기나 보자’ 오기가 생기더군요. 결국 냄새 제거에 성공했죠. 당장은 힘들어도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장기적으로 수익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룡알-현수막-다시 공룡알’ 완벽한 순환
늘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하는 강 대표는 최근 현수막에 꽂혔다. 자체 개발한 재생원료 원단을 현수막으로 만들어 활용한 뒤 수거해 다시 곤포사일리지용 필름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순환경제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인쇄가 제대로 될지 실험하기 위해서 인쇄소 등에 문의를 했더니 선뜻 해준다는 곳이 없었어요. 사비를 들여 인쇄기계 등을 구입해 실험을 하고 있죠. 현수막 천도 여러가지가 있어요. 우리가 만든 원단에 잉크가 잘 먹을지, 표면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인쇄 후 색상이 선명하게 나올지 등 확인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신재(재활용 원료가 아닌 새로 생산된 순수 원료)가 아닌 재활용원료를 사용했다고 해도 동일한 혹은 그 이상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가져가야 시장 경쟁력이 있잖아요. 하나하나 꼼꼼하게 실험을 하는 건 기본이죠.”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은 무려 약 236톤에 달한다. 이는 1.5톤짜리 소형 승용차 약 157대 무게에 해당하는 수치다.
현수막은 대부분 PVC 재질로 만들어져 자연분해가 되지 않는다. PVC는 염소계 플라스틱으로 다른 플라스틱과 혼합 재활용이 어렵다. 또한 소각 시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고 매립할 경우 수십 년간 땅속에 그대로 남게 된다.
이처럼 단 몇 주만 사용된 뒤 더 큰 환경오염 문제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애물단지다. 폐현수막으로 도서대출용 가방을 만들어 도서관에서 사용하도록 하거나 건축자재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강구 중이다. 만약 강 대표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또 하나 생기는 셈이다.
“돈 벌기도 어려운데 쓸데없이 왜 그런 무모한 일을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계셔요. 물론 성공을 할 거라는 보장은 없죠. 하지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결국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이왕이면 제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도움이 되면 좋잖아요. 힘들어도 반드시 성과를 낼 생각입니다.”
영천=글·사진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 제품이나 포장재를 생산하는 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 폐기물 중 일정량 이상을 재활용하도록 의무를 부여한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부과금을 내야 한다.
■곤포사일리지 = 곤포는 곤포란 건초와 짚 등을 운반과 저장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둥글게 또는 사각으로 압축·결속하는 것이다. 곤포 안에 저장된 작물 내부 영양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사일리지 발효기술이 사용되는데 이를 통틀어 곤포사일리지라 한다.
■순환경제 = 기존의 ‘생산-소비-폐기’ 구조에서 벗어나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자원을 지속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제 시스템이다. 버려지는 물질을 새로운 제품 원료로 활용해 자원 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재활용&새활용 = 재활용은 폐기물을 원료로 되돌려 같은 용도나 다른 용도의 제품으로 다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새활용(업사이클링)은 단순 재활용을 넘어 폐기물을 더 높은 가치와 품질의 제품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드는 것은 재활용이고, 페트병으로 가방이나 의류를 만드는 것은 새활용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