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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른쪽’ ‘더 우익’이 유리한 ‘극우의 역설’

2025-09-08 13:00:01 게재

지난해 불법계엄 이후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상당한 수준의 세력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는지 모르나, 지극히 일시적이고 제한된 시대착오적 인식의 준동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계엄의 당사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기소되고 법의 심판대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국힘)의 강성 당원을 중심으로 하는 ‘극우의 힘’이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장동혁 당 대표와 김민수 최고위원 등은 ‘극우 아스팔트’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탄핵반대는 물론 대놓고 계엄을 옹호한다.

극우적 사고와 주장에 대한 당위론적 비판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극우세력은 한국사회의 현실세력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들 극우세력은 자신들에 대해 ‘극우(extreme right 또는 far right)’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소수민족 배제와 이민 반대, 배타적 국수주의 등 만이 극우가 아니다. 또한 파시즘과 나치즘 등의 군국주의적 이데올로기 만이 극단적 우익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극우정당과 보수정당이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당연히 계보와 계열이 다르다. 극우정당은 나름의 지향과 정치철학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극우’는 전통적 의미의 극우와도 차별화된다.

'한국 극우’ 전통적 의미의 극우와도 차별화

한국적 의미의 극우는 반공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를 기본 토양으로 삼고, 각론에서는 부정선거론을 신봉하며 윤석열 계엄을 ‘계몽’으로 받아들인다. 보편성과 객관성, 법치와 정의를 결여한 극단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주권자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친중반미와 친북반일이라는 극단의 편향으로 매도한다. 급변하는 대외적 안보환경과 위기에 직면한 경제상황은 아랑곳 없이 한미 정상회담의 긍정적 측면을 깡그리 무시하고 정권의 실패를 바라는 것 같은 언행에 조금의 주저도 없다.

한미 정상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 미디어에 ‘숙청’ ‘혁명’ 등의 단어를 올린 해프닝,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교회 압수수색’ 등을 언급했던 상황도 당황스럽고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에 극우의 담론이 유통되는 구조가 생성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모스 탄 미국 리버티대 교수 같은 부정선거론자가 한국 극우세력과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고 있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극우에 편승하는 반역사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 부부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들의 단죄를 ‘내란몰이’ ‘정치보복’ ‘정치탄압’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윤 어게인’을 외치고, 일개 극우 유튜버에 포획되어 가고 있는 국민의힘은 보수 본류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보기 어렵다. 윤석열에 대한 수사를 인권탄압이라며 이의 실태를 알리겠다고 워싱턴으로 간 전한길의 존재감도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국민의힘 내부의 일부 소장파가 당내 극우에 반론과 비판을 제기하지만 내부의 세력 지형상 동력을 받지 못한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국민의힘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으려면 중도적 유권자에 다가가는 전략을 구사할 법도 한데 아직은 요지부동이다. ‘더 오른쪽’으로 가고 ‘더 우익’으로 가는 것이 당 지도부나 영남에 기반을 둔 의원들에 유리하다고 본다면 ‘극우의 역설’이 성립할 법도 하다.

극우의 존재가 집권세력을 더욱 강경하게 몰아가고 이의 반작용이 다시 국민의힘의 극우화에 명분을 제공하는 악순환은 단순한 정치 양극화 차원을 넘어가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9월 1일 정기국회 개원식의 ‘한복 대 상복’의 대조가 현 단계 한국정치 수준의 모습을 명징하고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집단지성에 의한 ‘광정’, 아직은 기대난망

이러한 최악의 대결구도가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지고 그래서 국민의힘이 참패한다면 그때 변할 수 있을까. 내란수사가 끝나고 피의자들의 단죄가 끝나면 극우의 준동은 사라질 수 있을까.

일단 극우 유튜버들과 이에 편승하는 정치의 고리를 제도적 차원에서라도 단절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극우는 단순히 비합리적 집단으로만 치부되기 어려울 정도로 조직화되고 있다. 결국 집단지성에 의해 광정(匡正)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기대난망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