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텍사스-캘리포니아 맞불 선거구 전쟁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보트가 지난 8월 29일 공화당에 유리한 의회 선거구 재조정 법안에 서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게리맨더를 부여하는 선거구 재조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조치는 전통적으로 10년마다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진행되던 선거구 개편 관례를 깨고 2021년 이후 불과 4년 만에 시행된 것이며, 공화당은 2026년 중간선거에서 최대 5석을 추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응해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은 조건부 맞대응 전략을 내놓았다. 즉, 텍사스가 의석을 늘리기 위해 지도를 다시 그린다면 캘리포니아도 같은 방식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지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뉴섬은 오는 11월 4일 주민투표에 붙일 ‘발의안 50’을 추진 중이며, 만약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이 최대 5석을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선거구를 마련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가 통상 백악관 집권당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역대 사례를 의식하며 하원에서 근소한 과반을 유지하고 있는 공화당이 불리한 국면을 피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재 공화당은 219대 212라는 근소한 과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4석은 공석이다.
텍사스는 전체 38석 가운데 공화당이 25석, 민주당이 13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는 52석 중 민주당 43석, 공화당 9석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두 주의 맞대결은 2026년 중간선거의 향배 나아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법 동력까지 좌우할 수 있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게리맨더링 도미노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움직임은 이미 전국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주리 인디애나 플로리다 등 공화당 주들이 잇따라 하원 선거구 재조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민주당도 일리노이 메릴랜드 뉴욕에서 맞불 전략을 검토 중이다.
미주리주에서는 공화당 소속 마이크 키호 주지사가 지난 금요일, 주 의회가 9월 3일 특별 회기를 열어 주 하원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미주리에는 총 8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있으며 이 가운데 민주당은 2석만 보유하고 있다.
비슷한 움직임은 인디애나에서도 감지된다. 공화당 의원들은 8월 27일 트럼프 대통령 및 행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주 하원 9개 선거구를 재조정해 민주당 현역 2명을 축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인디애나는 이미 9석 중 7석을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지만 추가 의석 확보를 노리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이 최근 인디애나를 직접 방문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플로리다 역시 재조정 가능성이 큰 주로 꼽힌다.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은 이미 특별위원회를 꾸려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플로리다는 2022년 론 드샌티스 주지사가 지도 개편을 밀어붙여 공화당 의석을 4석 늘린 전례가 있어, 추가 재조정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처럼 인디애나 미주리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공화당 주들이 잇따라 나서면서 민주당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주지사들은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일리노이와 메릴랜드, 그리고 2028년 대선을 앞두고 뉴욕주에서 중간기 선거구 재조정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텍사스를 출발점으로 시작된 게리맨더링 논란은 전국적인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UCLA 투표권 프로젝트는 새로운 텍사스 지도가 소수민족 유권자가 선호하는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선거구로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는 연방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연방법은 흑인과 히스패닉계 유권자로 구성된 소수민족 인구를 선호하는 후보가 패배하는 선거구로 의도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도는 히스패닉계 다수 선거구를 늘린 것처럼 보이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인 유권자의 블록 투표가 후보 선택을 좌우하는 선거구에 소수 민족 커뮤니티를 체계적으로 배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소수민족 문제가 특히 댈러스와 샌안토니오 주변에서 문제가 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애보트는 2026년 예비선거 3월 3일까지 새로운 지도를 확정해야 하는 압박을 안고 있다. 시간 제약 속에서 법정공방이 이어질 경우 실제 적용 가능성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유권자 승인 없이는 새 지도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정치적 승리 확보한 뉴섬 주지사
캘리포니아 민주당은 텍사스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발의안 50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조치는 과거 유권자들이 스스로 도입한 독립적 선거구재조정위원회의 원칙을 거스른다. 정치권의 손에서 빼앗은 권한을 다시 돌려주자는 시도는 결국 권력의 자기 합리화로 비칠 위험이 크다.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의 지지가 미지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뉴섬과 함께 일하는 여론조사 전문가인 데이비드 바인더는 입법부가 2026년, 2028년, 2030년 선거를 위한 새로운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주법을 일시적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유권자들의 초기 지지가 낮게 나타났다는 내부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선거구 재조정 추진 시도는 단순한 지도 변경을 넘어 뉴섬의 대선 정치적 입지 강화와 직결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11월 주민투표에 부쳐질 선거구 재조정 이니셔티브가 성공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싸움 자체가 이미 뉴섬의 승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입법부를 설득해 새 지도를 승인받고 유권자에게 직접 제출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과정에서 뉴섬은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극대화했다.
한편, 소셜미디어와 지도 개편 이슈를 통해 그는 주 내 정치적 존재감을 강화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등록 무소속·민주당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카말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25% 대 19%로 앞서는 등 차기 대선경선에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내부뿐 아니라 중서부 지역에서도 뉴섬의 공격적 대응은 주목받고 있다. 유권자들이 선거구 재조정 자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텍사스와 트럼프 대통령에 맞선 그의 단호한 대응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뉴섬은 선거구 재조정 이니셔티브의 결과와 무관하게 정치적 승리를 확보했다. 지도 개편 여부와 관계없이 그는 트럼프의 권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를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이번 움직임은 단순한 주 차원의 선거구 재조정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정치 지형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적 행보로 뉴섬의 대선 야망과 맞물려 향후 미국 정가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선거구 조정만으로 하원권력 장악 어려워
이번주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서 추진된 중간기 선거구 재조정은 내년 미국 하원 장악을 위한 전장을 좁히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남은 임기 동안 하원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싸움이다.
그러나 하원이 근소한 다수 의석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선거구 재조정 싸움이 확대되는 것만으로는 하원 장악권을 결정짓기 어렵다. 양당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지도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선거구 재조정 가능성이 가장 높은 주들(텍사스 캘리포니아 오하이오)을 제외하더라도 2024년 선거에서 5%p 미만의 차이로 결정된 27개 하원 의석은 여전히 재조정 대상이 아닌 주에 남게 된다. 이 중 14석은 공화당, 13석은 민주당이 보유하고 있어 근소한 경쟁구도는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