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AI 세대의 ‘레트로’ 시험

2026-07-24 13:00: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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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는 매 학기 성적표를 받아 든다. 학생들의 ‘강의평가’다. 대학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4.5점 만점이 일반적이다. 과목 평점, 단과대 평점, 대학 전체 평점이 나온다. 학생들은 강의평가를 할 때 수업 개선 요구 사항을 입력한다. 특이한 내용이 있다. ‘억지로 대답을 강요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자신은 대답하기 싫은데 교수가 억지로 시켜 불편하다는 얘기다. 이런 민원은 필자만의 경험은 아닌 듯하다. 여러 대학 교수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그런 내용이 있어 혀를 차곤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다. 코로나19 세대는 대체로 질문에 소극적이다. 3년을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했던 터라 질문 자체를 두려워한다. 군대를 갔다 온 남학생이나 휴학했던 여학생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고학년은 고교 시절에, 저학년은 대학생 때 비대면 수업을 한 영향이 크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질문을 던진다. 얼굴과 이름도 익히고 출석도 자동으로 점검하니 1석 3조다. 그보다도 학생들의 ‘생각의 근육’을 자극하는 것은 큰 수확이다.

질문의 기술은 AI 시대의 ‘개인 역량’

학기 초 머뭇거리던 학생들은 중간고사 이후 달라진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질문하는 인간, 즉 ‘호모퀘런스(Homo Quaerens)’가 경쟁력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아인슈타인은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질문은 사유의 경건함이다”라고 설파했다는 말도 곁들인다. 그러자 학생들은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질문의 기술’이 곧 ‘개인의 역량’이라는 점을 깨닫는 듯하다. AI 활용이 일상화하는 요즘, 개인의 진정한 능력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점이 발견된다. 질문의 ‘날카로움’보다 답변의 ‘맥락’이 아쉽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과 ‘맥락’을 설명하는 데 당황해한다. 원문보다는 AI 요약을 선호하는 ‘요약 우선 소비(Summary-first Consumption)’에 길들여서다. 책도 논문도 드라마도 주마간산(走馬看山)에 매달리는 ‘요약 세대(Summary Generation)’의 특징이다. 숏츠와 릴스를 즐기고, 과제물은 AI 요약에 의존하는 디지털 세대의 현실이기도 하다. 행간과 맥락을 꿰뚫는 문해력이 둔해지고 ‘요약’에 중독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건 교수의 책무다.

대학생의 생성형 AI 활용은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인문 사회계열이든 이공계열이든 전공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수 초 만에 원하는 답 찾아주고, 코딩과 연산 해주고, 석 줄 요약 해주고, 발표 자료까지 만들어 주는 세상이다.

학생의 PPT 자료가 멋져 물어보면 “AI 손을 빌렸다”고 한다. 과제물 작업 때 AI 활용이 노멀이 된 셈이다. 문제는 과도한 의존이다. 편리함이 생각의 근육을 갉아 먹을 수 있다. AI가 대신 써주는 글에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생각을 문장으로 엮는 능력은 약해질 수 있다. 생각 근육의 무력화다.

이런 까닭에 ‘레트로(retro·복고)’ 시험도 필요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손을 대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쓰는 수기 시험이다. 필자는 지난해까지 학생에게 노트북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고 시험을 치렀다. 저널리즘 과목 특성상 논제 작성에 정확한 정보 탐색과 활용 능력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학생들은 생성형 AI 활용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기계적인 문장과 유사 표현이 많았다. 게다가 손 글씨 자체를 버거워했다. 1차로 노트북에 타이핑한 뒤 옮겨 적었다. 디지털 기계가 생각의 근육을 밀어내는 인상이었다.

복고풍 ‘손 글씨’ 시험이 필요한 까닭

그래서 올해 1학기에는 시험 중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했다. 백지에 펜으로만 쓰게 했다. 그랬더니 감성이 꿈틀댔다. 답안지 곳곳에 생각과 생각, 고민과 고민의 흔적이 넘쳤다.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을 다듬는 과정이 손 글씨에 배어 있었다. 노스이스턴대 등 미국 대학에도 필기·구술 시험이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손 글씨 답안지인 ‘블루북’ 판매량이 최근 2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한 점을 예시로 들었다. ‘AI 요약 세대’ 학습법에 대한 성찰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AI 세대에게 가장 미래적인 시험은 가장 오래된 시험인지도 모른다.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