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5년 국정 설계자 - 오기형 의원(국정기획위 규제합리화TF팀장)
“경제형벌·배임죄 완화 전제조건은 민사 책임 강화”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디스커버리제도 도입 돼야
박정희-중공업, 김대중-IT 이어 지금은 ‘AI’로 도전해야
혁신적 기업, 자본 유치하려면 주주 들러리 세워선 안돼
은행들, 위험을 소비자에 전가하며 돈 버는 구조 바꿔야
배임죄와 형벌죄 완화와 관련해서는 기업들이 민사책임을 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형벌이나 과징금 제도를 축소, 합리화하는 전제 조건은 그래도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게 바로 민사 책임의 강화”라고 했다.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디스커버리 제도(증거 개시 제도) 도입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러면서 은행의 ‘땅 짚고 헤엄치는’ 영업에 대한 쓴소리도 내놨다. 리스크를 고객에게 떠넘기고 저위험 대출에 주력하면서 ‘가계대출이 늘어날수록 돈을 버는’ 특혜적 구조를 질타했다.
오 의원은 공정과세와 함께 공정한 기업 지배구조로의 변화가 코스피 5000시대를 만들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해왔다. 상법 개정의 전면에 나서며 당내와 함께 국민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오 의원은 이재명정부 국정기획위 기획위원이면서 규제합리화 TF팀장으로 규제개혁과 함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참여했다. 그는 민주당에서 코스피5000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 AI 등 진짜 성장 전략으로 과연 잠재 성장률을 반등시킬 수 있을까.
현 정부에서 타깃팅을 잘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중화학 공업 정책, 김대중 대통령 때 IT산업에 대한 투자가 있었는데 2025년엔 AI 산업에 투자해보자는 발상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에서 2010년대까지 우리 경제에 플러스가 됐던 것은 WTO 가입과 중국 효과였다. WTO 가입으로 경제 영토가 넓어졌고 중국의 고도 성장이 한국에 플러스가 됐다. 거기에 IT 산업이 있었다. 산업 전략적인 것과 주변 통상 환경 덕분에 고도 성장 내지는 안정적 성장이 가능했다.
그런데 중국이 위축되고 또 우리나라를 따라잡기 시작하고 미중 갈등 속에서 통상이 조건부 자유무역 체제로 바뀌면서 글로벌 가치 사슬이 달라졌다. 밸류체인 자체가 달라지니까 우리에겐 큰 도전이 왔다. 지금 잠재 성장률이 2.0%인데 이걸 좀 더 끌어올려야 한다. 전략적, 효율적, 혁신적 투자로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우는 게 지금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 반등을 할 수 있느냐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도전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자본시장 밸류업(기업가치 제고)과 관련해 2014년에 일본에서 만든 이토 보고서를 봤다. 일본의 밸류업정책이 잘 정리돼 있다. 일본이 1989년 이후에 꺾인다.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지나 24년이나 25년쯤 됐을 때 이 보고서가 나온다. “고령화되고 노동이 증가될 가능성이 별로 없으면 자본을 효율적으로 써야 된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한테 자본이 가도록 해야 된다. 그러려면 자본시장 속에서 혁신적 기업이 어떻게 자본을 유치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1만 4000포인트였던 닛케이지수가 10년 지나서 4만 2000포인트를 넘었다. 3배가 넘는 수익률이다.(10일 닛케이지수는 4만3837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핵심은 경영진들이 기관 투자자, 개인 투자자들에 대해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야 돈이 지속적으로 혁신적 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영진의 행태를 바꿔야 된다는 요구였다.
장기 기관 투자자에게 경영진이 회사의 운영 방향 등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장기 기관 투자자들이 봤을 때 이 회사의 말이 신뢰할 만하고 잠재력이 있다면 계속 투자할 것이다. 그래서 성장의 성과물들을 장기 투자자들이 같이 공유하는 거다. 이런 스탠스가 제일 중요하다.
국가적으로 생산적인 분야, 혁신적 분야에 자본이 들어가도록 해야 된다. 그러려면 자금을 유치해야 되는데 어떻게 유치할 거냐. 경영자들이 투자자들을 들러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 ‘주주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주주들이 무조건 배당하라는 건 문제가 있다. 투자자가 성과를 누리는 방법은 배당과 주가 상승이다.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은행 이자율보다 높으면 계속 투자할 거다. 그걸 보장할 거냐의 문제인데 소통과 신뢰 문제다. ‘기업들이 그러한 판단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거다. 그런데 정보 공유도 안 하고 주주를 들러리 시키니까 주주들이 화가 나 있는 거다.
● 지속 가능한 가계부채 관리, 가능할까.
부동산 부채가 과도하냐 판단 기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80%다. 80% 이내로 관리해야 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로 관리해야 지속 가능하다. 그동안 DSR에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52%나 됐다. 소액대출 외에도 전세대출, 정책 대출이 예외였다. 은행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돈을 떼일 리가 없는 대출이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가계부채 총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돈을 번다. 은행 돈 벌게 하는 것 외엔 이해가 안 되는 구조다.
게다가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고정금리대출이 80%가 넘는 미국은 금리 인상의 충격이 금융기관에게 가지만 변동금리대출이 70~80%인 우리나라는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매년 예대마진으로 대규모 수익을 얻는다. 리스크는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정책 금융 보증 받아서 예대 마진을 얻고 가계부채가 최고 고점을 달했을 때 가장 돈도 많이 번다. 금융업은 일반 영업과 달리 특별한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이익을 보장해 주는지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가계부채 구조는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와 이를 방치한 금융당국 정책담당자들의 책임이 크다. 미국은 고정금리로 하니까 은행들이 미리 통화량을 조절한다. 가계대출이 너무 많으면 자기가 책임지게 되니까 과도하게 하지 않는다.
또 다른 대안은 비소구 대출이다.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이 급락해 대출원금보다 떨어지더라도 담보물인 집만 반환하면 더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대출 방식이다.
● 기업들은 규제가 더 많아졌다는 평가들을 한다.
규제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가는 게 맞다. 너무 많은 규제가 쌓여 있어서 이걸 정리해야 된다라는 생각으로 매 정권 초기마다 하는데 왜 안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다.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환경 관련 규제 또는 다양한 인허가 규제를 갖고 있는 데서 공무원들이 규제개혁에 소극적이고 형벌 같은 경우에는 형벌 집행하는 쪽에서 형벌을 계속 늘리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형사 책임을 강화하는 게 쉬우니까 입법적으로도 많이 이뤄졌다. 기업들이 집단소송과 징벌적 배상,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 민사 책임 강화에 반대한다. 그러면서 규제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니 담론이 진행될 수 없다.
● 상법 개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코스피 2700포인트에서 3200포인트까지 올라온 것은 호기심이다. 신뢰가 누적돼서가 아니라 안 할 것 같은데 하네, 이거 되게 쉽지 않은 건데 의지를 갖고 하네, 1차 (상법 개정) 하다가 멈출 것 같았는데 2차까지 하네 등의 호기심 속에서 주가가 500포인트 오른 거다. 이제는 잠시 지켜보고 있다. 지금 상황은 ‘경영진들이 일반 주주들을 과연 지금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느냐’고 묻는 거다. 아직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쳐갈 거냐가 과제다. ‘이제 끝났습니까’라고 물어보는 대부분이 자본시장 선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 우리나라 증시의 건전성은 어느 수준인가.
중요한 것은 불공정성 해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삼성물산 전체 주주와 국민연금에게 손해를 끼쳤다. 삼성물산 주주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이사들한테 연대 책임을 물을 것 같으면 그 행위를 했을까. 절대 안 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엘지화학의 엘지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에스케이와 두산에너빌리티 등 다른 나라에는 없는, 예상하기 힘든 행태들을 하고 있는 게 제일 큰 문제다.
● 상법 개정을 이어가는 데에 야당 반대도 작지 않다.
당내 설득이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에 국민들과 언론의 설득이 중요하다. 똑같은 의제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이 있으면 국민의힘이 버티기를 해도 단독처리가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그 정도의 내부 공감이 있었다. 앞으로도 내부 설득 등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중요하다.
●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 대기업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다가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상법을 통과시키는 건 다소 껄끄럽지 않나.
기업이 껄끄러운 게 아니라 기업 오너들이 껄끄럽다는 얘기일 것이다. 여전히 ‘대기업은 대기업 오너의 것이다’, ‘대기업 오너를 힘들게 하는 게 대기업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틀 안에 있다. 과연 그런가. 상법 개정은 기업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오너들의 과도한 사익 편취와 이에 따른 위험들을 예방하는 차원의 제도 개혁이다.
● 배임죄 완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배임죄 조항을 집행할 때 엄격하게 해석하는 기준으로 경영 판단의 원칙(정당한 의사결정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원칙) 적용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문구를 정리해야 된다. 독일의 입법례가 있다. 독일 주식법은 경영 판단 원칙을 넣어 놨다. ‘타인의 사무를 관리하는 자에 대해서 업무상 임무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되고 손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면 책임진다’는 게 배임죄 요건이다. 회사와 함께 주주도 ‘타인’에 들어갈 수 있다. 주주충실의무다.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 경우 배임죄가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배임죄를 엄격하게 해석하라고 지침을 줘 확대 적용 가능성이 없어졌다. 지금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좀 더 나아가면 배임죄가 적용됐던 것들 중에서 중요한 행위들을 엄격하게 유형화시킬 수도 있다. 형법의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유형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죄형법정주의에선 명확성의 원칙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그러면 현행 배임죄를 폐지하고 유형화로 갈 수도 있다.
● 경제형벌 합리화 원칙인가
경제형별 합리화 담론도 배임죄도 같은 맥락이다. 매년 주기적으로 경제 범죄자들을 대거 사면복권한다. 그러면 그런 경제형벌을 범죄시할 필요가 없다. 행정벌로 과태료 처분해야지 전과자 만들 필요가 있을까. 반복되는 범죄라면, 사회적으로 형벌의 효과가 없다면 정리할 필요한 것이다. 과징금도 과도하다면 다운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형벌이나 과징금 제도를 축소, 합리화하는 전제 조건은 그래도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민사 책임의 강화다. 기업들의 행태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인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징벌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집단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증거 개시에 따라서 우리가 증거를 속여 재판에 이길 수는 없다,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하면 형사 책임과 상관없이 결국 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는 거다. 예방적 효과를 만들자라는 게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디스커버리 제도 즉 증거 개시 제도다. 이 제도 도입을 소극적으로 하면서 형벌만 완화하자고 하니까 시민단체나 소비자단체가 ‘뭔 소리냐’고 하는 거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