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미중 전략경쟁 속 에너지안보, 우리가 갈 길은
글로벌 에너지 이슈가 단순한 경제적 자원 거래를 넘어 지정학적 패권도구로 변모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항일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 퍼레이드 행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외 20여 개도국 지도자들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올라 미국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직전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 주도 다극질서 구축 의지를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인 중국은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을 설치, 30년간 연 5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해 전통적 에너지안보 패러다임과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다. 중국은 LNG 대미 의존 회피와 달러 기반 결제시스템 우회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한편 푸틴은 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모디 인도 총리를 포섭해 러시아산 원유의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며 서방 제재망의 실효성을 약화시켰다. 미국의 2차 관세부과에 대한 인도의 반발을 활용한 러시아의 접근은 중·러·인도 3각 협력 모양새를 보이게 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재원과 지지를 확보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변화 주목할 필요
가열되고 있는 지정학적 전략경쟁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러시아 에너지 공급이 특정국에 집중됨에 따라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대체 공급원에 대한 수입국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 단절과 미국 공급선으로의 전환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재편과 유럽의 대러 안보여건 악화를 예고한다.
둘째, 디지털 경제 확산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으로 인해 에너지안보의 핵심축이 화석연료 확보에서 전기 인프라 구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셋째, 지정학적 경쟁 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은 약화되고 있다. 리튬 희토류 등 핵심 광물들이 특정국들에 집중돼 있고 태양광 부품용 폴리실리콘과 웨이퍼의 90% 이상을 중국이 제조해 청정에너지 전환마저 지정학적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가스와 원유 이용 및 개발 장려와 원전 확대를 에너지정책의 주축으로 설정했다. 특히 2050년 원전 용량 4배 확대, 2030년 대형 원전 10기 건설 목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안정적 전력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는 바이든의 청정에너지 정책 폐기와 재생에너지 보조금 삭감을 통해 정치적으로 중국과 차별화된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미중 간 청정에너지 정책의 상반된 방향성은 탈탄소 기술도 전략경쟁의 도구로 전환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우리는 전략경쟁에 따른 에너지안보 변화 추이를 주목하며 대응 시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에너지안보 대처 시 ‘저렴한 공급 확보’ 중심의 정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치열해진 전략경쟁과 진영화를 고려해 공급망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동적 에너지안보 개념 하에서 다각도의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미·중·러 간 전략경쟁과 갈등으로 과거식 분업과 상호의존의 취약성을 탈피해 자립형 또는 자체 권역별 협력구조로 전환되는 만큼, 우리도 에너지 공급망의 충격완화를 대비할 때 이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와의 에너지 협력은 높은 리스크를 수반하는 만큼 제한이 불가피하다.
셋째, 러시아산 우라늄 농축 서비스 탈피를 위한 원전 연료 공급 안정화, 사용후 핵연료 처리를 통해 원자력 에너지 순환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탈탄소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자립도 제고를 달성하는 데 핵심 사항이다. 미국 등 해외 원전 사업도 지적재산권 등 분쟁 사례들을 교훈 삼아 잠재 리스크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고려해야 한다.
넷째, 전기화 인프라의 선제적 구축이다. AI 등 신기술 발전에 따른 전기화 수요 급증에 대비해 안정적 전력 공급 인프라 투자와 송배전 확장을 위한 규제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
전략적 전문성 발휘해 에너지안보 달성을
결론적으로 향후 에너지안보는 단순한 수급 조정 차원을 넘어 지정학적 전략경쟁의 핵심 영역으로 부상한 만큼 전략적 역량 발휘가 중요하다. 더욱이 원자력에너지 분야는 이중용도 성격상 대외 전문성 강화와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이 필수적이다.
급변하는 국제 에너지 질서 속에서 에너지 생태계 조성과 선택적 협력 체제 구축 등 전략적 전문성의 발휘를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안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