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울타리, ‘경기’ 옛길을 걷다
한강물길 따라 걷는 경기옛길/최철호/아임스토리(주)/1만8000원
‘옛 경기’는 왠지 따듯하다. 권력과 돈이 집약된 ‘한양’의 뜨거움에 조금은 떨어져 있어 여유롭다. ‘경기’라는 이름은 개경을 수도로 둔 고려시대에 생겼다. 고려 말에는 한강을 기준으로 좌도와 우도로 나눠 경기 범주에 남경(서울), 금주(시흥), 과주(과천), 당성(화성), 포주(포천)까지 포함됐다.
대수, 아리수, 한수, 경강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한강은 태백산 오대산 자락에서 솟아난 한 줄기 물이 양평 두물머리를 거쳐 서해로 흘러가기까지 수많은 이름과 사연을 아우르며 흘렀다. 서울의 심장이 한강이라면 경기는 그 심장을 감싸는 울타리다.
‘한강물길 따라 걷는 경기옛길’은 한강을 따라 역사 속 ‘경기 옛길’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서술됐다. 이 책은 양평 양근에서 시작해 남양주 두물머리로 이어지고 광주의 남한산성과 성남의 옛길, 하남의 강변마을을 지난다. 노량진 배다리에서는 정조의 원행길을 따라가고 백사주이십리라 불렸던 여의도와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은 양천의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안양천의 포구와 영등포의 기억, 행주산성에 울려 퍼진 권율 장군의 함성, 고양의 왕릉과 임진강 전투의 현장을 거쳐 파주 장단의 끊긴 철길, 강화 김포 교동도의 바닷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3년에 걸쳐 발로 밟으며 찬찬이 써내려갔다.
정약용이 바라본 노들섬 배다리, 겸재 정선의 붓끝이 머문 양화진과 선유봉, 정조가 행차하던 시흥과 과천, 병자호란의 아픔을 간직한 남한산성, 임진왜란의 행주대첩과 임진강의 전투 등 인물과 사건을 풍경과 함께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강을 무대로 한 과거와 현재의 조우는 강이 품어온 600년의 시간을 중재한다. 개발과 전쟁 속에서 지워진 이름, 지도에서 사라진 이름, 행정경계 너머에 존재했던 경기의 옛길을 되새기며.
저자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장은 한양도성 전문가로 오랫동안 서울과 경기의 성곽과 도성, 옛길을 연구하며 강의와 답사를 해왔던 경력을 이 책에 쏟아냈다. 그는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도상경영’ 등을 썼다. 서울용산학연구센터 이사, 양천문화재단 수석비상임이사로 일하며 연구와 집필, 강연으로 도시와 사람의 역사를 대중들에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