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대표 중심 ‘일원화’…원내전략까지 장악 우려
정청래 “중요한 당내 상황, 직접 일일이 챙기겠다” 선언
당대표, 정책위 지휘권 보유 … 원내대표 역할 약화
‘당 대표-당무, 원내대표-원내업무 통할’ 당헌과 배치
“원내정당화, 당원 아닌 국민 겨냥 독립적 의정활동 취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당 운영 전체를 일일이 챙기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원내대표의 원내 지휘권이 크게 약화될 전망이다. 과거 당대표에 의해 지명되던 ‘원내총무 시절’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에 따라 당 권한 분리를 시도한 ‘원내 정당화’에서 당 체제의 일원화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은 애초 국민의힘과 달리 정책위가 당 대표 지휘 아래에 있어 원내대표가 원내정책과 전략을 독자적으로 발휘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는 원내정책을 ‘통할’하도록 한 민주당의 당헌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의 최종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며 “최종 책임이 당 대표에게 있기에, 당무를 보다 더 철저하게 지휘하고 감독하고 체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 “잘못된 일 있으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즉시 바로 잡겠다”며 “중요한 당내 상황은 제가 직접 구체적으로 일일이 점검하고 챙기겠다”고 했다.
이는 여당이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강성지지층의 압박에 못 이겨 당대표가 깨뜨린 사태 이후 나온 발언이었다. ‘이재명 당대표-박찬대 원내대표’의 획일적 리더십을 지향하는 모습이다.
정 대표가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를 깬 건 이번이 2번째다. 윤리특위를 거대양당 의원 5명씩 배정하기로 했던 것을 무력화시켰고 이번엔 ‘특검법 개정안과 정부조직법 통과’를 조율한 합의안을 파기했다.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총회를 거치기도 전에 ‘파기’ 선언이 먼저 나왔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 대표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소리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결국 당원들을 향해 사과했고 이 사건은 결국 정 대표의 장악력만 강화된 채 봉합됐다.
◆원내대표가 원내정책을 지휘하지 못하게 하는 당헌 = 민주당의 경우는 당대표가 애초부터 원내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당헌에 따르면 당대표는 정책위원장 등 정책위와 정책조정위원회, 상임분과위원, 법안심사위원 임명과 구성권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당대표는 ‘당무를 통할’하고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당을 대표하고 국회운영에 관하여 책임을 가지며, 원내 업무를 통할한다’고 구분해 놨다. 같은 당헌에서 서로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통할’은 총괄하여 지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 국무총리의 역할과 관련해 ‘국무총리는 행정 각 부를 통할한다’고 규정돼 있는 것과 같다.
‘당무는 당대표, 원내는 원내대표’로 구분해 독립적 ‘통할’을 규정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당대표에겐 원내 정책을 좌우할 카드가 주어지면서 애초부터 역할 분담이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당무와 원내정책을 갈라 운영했지만 강력한 당권을 행사하려는 당대표의 경우엔 원내 정책까지 깊숙이 관여할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당대표 시절 직접 쟁점이 되는 원내 정책 현안을 결정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나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도 이재명 당대표에 의해 종지부가 찍어졌다. 정책위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원내대표가 원내 정책 운영과 협상권이 없어지면 당헌상 권한은 원내수석부대표와 부대표 임명권과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 간사 선임뿐이다. 2000년대 이전에 당 대표가 임명한 ‘원내총무’로 회귀하는 셈이다.
◆무력화된 원내정당화 = 2000년대 초반 민주당은 당 대표가 ‘총재’로 공천권 예산권 등 당무와 함께 정책결정권까지 좌우하던 것에서 벗어나 ‘원내정당화’를 지향하는 개혁방안을 제안했다. ‘총재’의 지명직이었던 원내총무를 의총에서 선출하는 원내대표로 전환하는 ‘분권’을 시도했다. 이는 당과 분리돼 국회가 원내대표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국형 의회 운영을 본 뜬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당대표의 강력한 리더십을 추구하는 ‘획일화’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원내대표는 유권자가 국회의원들이다. 원내의 모든 협상, 여야 간의 협상을 담당하는 게 원내대표”라며 “양당의 원내대표끼리 합의한 사항인데 당대표에 의해서 번복됐는데 이러면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입장 여부를 떠나서 절차의 문제에 있어서 원내대표의 정당성이 상당히 훼손될 수 있다”며 “원내대표가 한 걸 강경그룹에 의해서 뒤집어진 결과라서 절차의 문제에 있어서는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내정당화를 얘기할 때 국회의원들에게 자율성을 좀더 주고 원내대표는 원외 조직이나 당무를 관리하는 당대표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구분돼 의원총회를 중심으로 운용하도록 한 것”이라며 “당대표가 원내대표에게 지시하거나 하는 하위개념은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이 당원들의 의사에 존중은 하지만 휘둘리거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라며 “국회의원은 당원이 아닌 국민들의 대표로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