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태권브이’ 50년만에 K-로봇기술로 부활
유압로봇시스템 전문기업 케이엔알시스템, 자체기술로 제작 완료
높이 12m, 무게 2만kg, 주먹 1m, 발길이 2.7m ‘동작형’ 거대로봇
앞차기·옆차기·돌려차기·지르기·막기 등 다양한 태권도 품새 구현
지난 1976년 7월 24일, 한국의 대표적인 로봇애니메이션 주인공 ‘로보트 태권V’가 국내 영화관에서 처음 선보였다. 영화를 제작한 김청기 감독은 당시 어린이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태권브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태권도를 하는 한국형 로봇 태권브이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슈퍼 히어로’가 됐다.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로봇 태권브이’가 탄생 50주년을 10개월여 앞두고 대한민국 로봇기술로 부활에 성공, 일반에 공개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유압로봇시스템 전문기업 케이엔알시스템(대표 김명한)은 태권도의 고장 무주군에 조성될 ‘무주 태권브이랜드’에 들어설 12m 크기의 동작형 로봇 태권브이를 자체기술로 제작 완료했다고 17일 밝혔다.
◆움직이는 로봇 태권브이, K-로봇 기술의 정수 = 50년만의 정식 부활을 앞둔 로봇 태권브이는 키 12m, 몸무게 2만kg에 달한다. 상체와 하체는 각각 4.8m, 7.2m 크기이며 주먹은 1m, 발은 폭 1.9m에 길이 2.7m에 달하는 거대로봇이다. 이 로봇 태권브이가 돌려차기를 하면 발끝이 지상 13m 높이에 도달한다.
태권브이는 총 34개의 독립관절로 태권도 품새를 구현한다. 태극 1장부터 8장까지 229개의 동작 가운데 역동성과 멋짐이 도드라지는 품새를 뽑아 일명 ‘무주 태권 품새’를 새로 만들었다. 무주 태권 품새는 대한태권도협회 부회장인 전익기 경희대 태권도학과 고황 명예교수의 주도로 준비자세,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지르기, 막기 등 13개의 구분동작과 5개의 연속동작으로 구성됐다.
태권브이가 시연할 동작 가운데 가장 고난이도 기술은 옆차기와 돌려차기이다. 이 중 돌려차기는 실제 태권도 선수가 완벽한 자세로 해내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으로 꼽히는데, 로봇에게는 특히 까다로운 과제였다. 첫 난관은 균형 유지였다. 키 12m, 몸무게 20,000kg의 로봇이 한쪽 다리를 머리 높이 이상으로 들어올리면서 몸통을 회전하면 고정된 다른 한쪽 다리에 가해지는 하중이 워낙 강해 자칫 전복의 위험마저 상존한 터였다.
여기에 회전과 발차기를 동시에 수행하면 관절과 프레임에 막대한 하중이 쏠려, 개발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강성 프레임 설계와 유압시스템 기반의 강력한 구동장치를 도입해야 했다. 그 결과 돌려차기의 발끝이 지상 13m에 이르는 위치까지 안정적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강력한 유압시스템과 첨단과학의 융합 = 태권브이는 이처럼 자유롭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위해 총 34개의 대형관절로 구성됐다. 각 관절은 고출력 유압 액추에이터와 서보밸브를 통해 제어된다. 이는 전기모터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고강도 파워와 안정성을 제공해 발차기나 몸통회전 등 고부하 동작을 가능하게 했다.
태권브이의 동작은 단순한 관절의 움직임을 넘어서서 태권도 품새 재현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동작데이터를 분석해 로봇 관절 각도로 변환하는 ‘AI 동작 맞춤화(Motion Retargeting) 기술’을 적용, 각 품새의 준비자세부터 마무리까지 과정을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게 했다.
태권도 시범단의 품새동작을 3차원 모션캡처 장비로 촬영해 서울과학기술대와 공동개발한 ‘AI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화했다. 이를 통해 인간과 로봇의 신체적 차이를 극복하고, 태권도 본연의 동작을 재현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향후 새로운 품새 동작을 손쉽게 추가할 수 있는 확장성도 확보했다.
또한 실제 로봇과 똑같은 가상로봇을 컴퓨터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했다. 가상환경에서 모든 품새동작의 충돌여부, 구조적 하중 등을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안전성을 미리 검증하고 최적화하여 시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했다.
◆케이엔알시스템 기술력 = 로봇 태권브이는 약 3만여개 부품과 AI 및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접목된 첨단 로봇시스템이다. 34자유도 관절에는 각각 34개의 액추에이터와 서보밸브가 사용됐다. 각 액추에이터마다 탑재된 서보밸브로 로봇을 정밀제어하여,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태권품새를 보여준다.
특히 유압 액추에이터, 서보밸브 등 전체부품의 약 70% 이상을 케이엔알시스템이 직접 설계 및 제작했으며, 80% 이상의 부품을 국산화하여 대한민국 로봇기술의 자립성을 강화했다.
또한 무주지역이 산악지형이라는 특성상 돌풍과 계절풍에 노출될 수 있어 지진 및 강풍에 의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내진·내풍 설계를 적용해 6.5 이상의 지진과 최대순간풍속 30m/s 이상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무주 태권브이랜드 개관 예정 = 로봇 태권브이 제작프로젝트는 무주군의 의뢰로 총 4년의 제작기간과 약 7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2021년 7월 설계를 시작해 로봇 제작 및 시스템 통합, 로봇 구동 시연을 마쳤으며, 조만간 다시 분해되어 무주군으로 운송 후 2026년 초 조립 및 시운전을 거칠 예정이다.
무주에서는 태권도 동작군을 확장해 현장 사정에 따라 품새를 바꿀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추가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에 제작된 태권브이는 50번째 생일을 맞는 2026년 7월 24일 전후로 무주읍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 ‘태권브이랜드’에서 일반에 공개예정이다.
케이엔알시스템 관계자는 “로봇 태권브이가 보여줄 고난이도 동작 등은 대한민국 로봇공학의 기술력과 가능성을 입증하는 소중한 경험”이라면서 “단순히 ‘크다’는 것을 넘어, 실제 태권도 동작을 구현하고 정교하게 제어하는 능력은 K-로봇이 세계시장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김명한 케이엔알시스템 대표는 “유압로봇시스템 전문기업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로봇 태권브이 부활 프로젝트는 어린 시절의 꿈을 우리 기술로 실현해내는 행복한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케이엔알시스템은 ‘K-휴머노이드 연합’ 공식 참여기업과 ‘AI팩토리 전문기업’으로 선정됐다. 이 회사는 이미 심해에서 작업하는 로봇과 제철소 용광로를 관리하는 로봇 기술이 현장에서 활용될 정도로 뛰어난 로봇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형 서보밸브 국산화에 성공하여 국내 최초로 양산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