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업체는 ‘꼼수’…정부는 ‘묵인’

2025-09-19 13:00:43 게재

감사원 “정부지원 농축산물 할인행사 직전 가격 올려”

사전 인지 담당자 별도 조치 안 해 … 중소기업 차별도

대형 유통업체들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농축산물 할인행사 시작 직전 소비자가격을 인상하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전에 문제를 인지한 농식품부 담당 공무원은 이를 방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국민 혈세가 특정 기업의 수익으로 흘러들어간 이 사건에 대해 명확히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감사원이 18일 공개한 농림축산식품부 정기감사 결과에 의해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지난 2022년부터 소비자 부담 경감 목적으로 할인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유통업체가 농산물에 대해 20% 할인 행사를 하면 농식품부가 업체에 구매자 1인당 1만원 한도에서 할인액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농식품부는 매년 할인행사 업체를 선정하고 매주 지원품목을 지정, 소비자들이 할인 가격에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지출 감소 혜택을 누리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 대형 유통업체들이 할인행사 직전에 가격을 인상한 후 할인행사를 하는 꼼수를 부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2023년 6~12월 진행된 6개 대형업체 할인행사를 조사한 결과 할인대상 품목 313개 가운데 132개 품목의 가격을 할인 행사 직전에 인상했다.

특히 농식품부는 지난해 9월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방치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담당 공무원은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할인행사 예정 품목에 대해 사전·사후 가격 정보를 제출받아 가격이 인상된 품목을 확인했다. 이후 업체로부터 “도매가 상승에도 가격을 못 올렸는데 이번에 올렸다”는 등의 소명을 들었다.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웠다면서도 이를 내버려 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해당 공무원은 현재 다른 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 조치를 받은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사원 지적에 따라 올해는 제도를 개선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또한 농식품부는 대형업체를 위한 별도의 할인행사를 추진하는 등 중소유통업체를 차별하기도 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2023년 직접 지정한 품목만을 대상으로 할인지원행사를 하는 사업 추진 계획을 세웠다. 이후 대형업체로부터 할인지원 품목 확대 요청을 받고 나서 중소유통업체를 배제한 채 대형업체만을 대상으로 지정 외 48개 품목에 대해 33억8000만원을 지원했다.

농식품부는 또 2023년 12월 할인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사업에 참여해 왔던 중소업체를 임의로 배제하고 대형업체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도록 한 뒤 119억원을 지원했다.

감사원은 농식품부 장관에게 실효성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하고 중소 유통업체를 제외한 채 대형 유통업체만을 위한 품목 지정이나 사업을 추진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한편 지난해 여름 ‘배춧값 급등’에도 일부 정부의 책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24년 여름철 배추 가격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비축한 봄배추를 가격이 안정적인 7월과 8월 초 과다하게 시장에 반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9월 가격 급등기에 비축 물량이 부족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했다.

또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여름철 배추 수급·가격을 전망하면서 6월 생산하는 봄배추 저장업체의 저장량과 및 출하시기 등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배추가격을 10㎏에 1만5000원으로 전망한데 반해 실제 가격은 2만48873원으로 40%의 오차가 발생했다.

감사원은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에게 농산물 비축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에게는 농업 관측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장세풍·박소원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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