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취업 · 빈곤 일등국가, 한국
독일, 2006년 ‘재직 고령자의 향상훈련’ 도입
경기침체 때 해고위험 줄이고 실업에도 재취업 용이 … 디지털-AI 전환 시대에 국가 경쟁력 강화
정년연장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무리한 정년연장은 제도가 시작되기 전에 고령자 조기퇴직을 늘리고 제도 시행 후엔 고령자의 고용 증가는 미미하고 청년 고용만 감소된다고 걱정이다. 그간 노인의 노동과 청년의 노동이 대체될 수 없다는 국내외의 연구들이 무색하다.
기계와 컴퓨터 등의 디지털 자본이 고령자의 업무를 쉽게 대체할 수 있어 고령자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고령자는 높은 임금에 낮은 생산성으로 기업과 경제의 성장 둔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지적을 재고할 근거는 없을까. 독일의 사례를 찾아본다.
2010년대 독일 정부는 다가오는 디지털·인공지능(AI) 시대 전문인력 부족을 해결하고 고령자가 신기술 도입과정에 고용이 불안해지는 것을 막기위해 고령자 직업능력을 향상하는 훈련에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일반적으로 기술 혁신은 실무경험을 자양분으로 한다. 독일은 한편으로 노동인구가 고령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전문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고령자의 경험을 생산성으로 전환할 방안을 찾았다.
독일은 2006년부터 ‘저숙련자 및 재직 고령자의 향상훈련’ 정책으로 기존의 직업경험을 신기술로 전환해 고령노동을 촉진하고 부족한 전문인력을 조달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독일은 직업능력 향상훈련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가 매우 불균등하게 분포돼 있음을 자책하곤 한다. 나이가 많고 자격이 부족한 노동자는 직업훈련이 좀 더 필요한 사람인데 오히려 노사가 이들을 위한 향상훈련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 고령자와 저숙련자는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 ‘저숙련자 및 재직 고령자의 향상훈련’ 정책은 도입 당시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저숙련자와 고령자의 직업자격 취득을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보조금은 훈련보조금과 임금보조금으로 나뉜다.
◆45세 이상 중소기업 재직자 지원으로 시작 = 고령자를 겨냥한 정부의 지원 내용은 직업자격을 통째로 취득하는 것이 어려운 고령자들에게 자격의 일부를 취득하도록 해 고령자가 자격을 갖춘 자로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또 신기술을 배우는데 전제가 되는 직업자격이 없는 경우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기회를 제공해 수준 높고 새로운 직업능력을 갖춰 기술전환에 대비하도록 했다.
기업에서 고령자가 변화하는 기술에 적응하지 못해 산업전환 과정에 해고 대상 1순위가 되는 것을 막고 만약 해고가 되더라도 직업자격을 갖춰 새로운 직장에 알선될 가능성을 높였다.
정책적 지원의 요건을 갖춘 자는 45세 이상의 노동자로 이들이 55세 이상 고령에도 노동시장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정부의 지원은 종업원 수가 250명 미만인 중소기업이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훈련바우쳐 제도는 훈련지원 대상을 실업자로 규정한다. 재직 고령자의 훈련지원정책은 취업상태 고령노동자를 훈련에 참여하도록 해서 실업을 예방하는 조치다. 이런 훈련은 정부공인 직업훈련기관들에 의해 수행됐다.
◆고용연장과 임금에 긍정적 효과 = 연방고용청은 제도 시행 초기 정책의 성과를 추정하기 위해 2007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재직고령자 직업능력 향상훈련을 지원하는 조치에 참여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지원조치에 참여하는 고령자와 그렇지 않은 고령자의 근속과 임금향상의 성과를 비교분석했다.
정책의 효과는 ‘통계적 쌍둥이 분석방법론’으로 광범한 행정자료로 인구통계학적인 조건은 같고 훈련에 참여 여부만 다른 통계적 쌍둥이의 계속근무 여부와 임금수준을 분석했다. 고령자 직업능력 향상훈련에 참여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비교한 결과 정부의 고령자 향상훈련 지원은 임금과 계속 근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령자 향상훈련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에서 지원사업에 참여한 고령자는 훈련이 끝난 지 2년 후에 82.7%가 여전히 해당 기업에 고용돼 있었다. 그러나 참여하지는 않은 그룹은 80%가 고용돼 있었다.
즉 2년 후 계속고용 가능성이 약 2.7%p 높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긍정적인 고용효과는 향후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노동시장을 떠나게 될 2020년대 전문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단기보다 장기, 파트타임 노동자에게 효과 커 = 계속고용 가능성은 전일제로 일하는 고령자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고령자에게 더 높았다. 이들의 계속고용 가능성은 약 7%p 높았다. 또 훈련프로그램이 최소 2개월 지속되는 장기적인 훈련에 참여한 고령자는 계속고용 가능성이 4.4%p 높았다.
2개월 미만의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 훈련이 종료된 지 2년 후 계속고용 효과가 미미했다. 2개월 이상 장기훈련을 받은 경우에는 계속고용 가능성이 평균이상으로 높을 뿐 아니라 2년 후 월 임금이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고령자보다 평균 72유로 더 높았다.
재직 고령자 향상훈련을 지원하는 정책은 2018년까지 지속됐다. 2019년 1월 제도는 ‘자격기회법’으로 그 이름을 바뀌었고 법의 적용 대상자가 확대됐다.
‘저숙련자 및 재직 고령자의 향상훈련’ 제도가 중소기업만이 지원의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자격기회법은 2500인 이상의 대기업에도 고령자의 직업능력 향상훈련을 지원했다.
이러한 적용대상의 확대는 디지털·AI전환이 중소기업에서뿐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새로운 기술자격을 갖춘 전문인력 부족현상은 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재직자 향상훈련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이후 고령자의 범주를 넘어 신기술훈련이 필요한 전체 직원으로 확대됐다.
이어 ‘내일의 노동에 관한 법’ ‘양성훈련 및 향상훈련지원 강화를 위한 법’ ‘국가향상훈련전략’으로 거듭 제도가 개선된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정부의 직업능력 향상훈련 지원정책은 고령자 대상사업이 보여준 고용과 임금의 성과에 기반해서 훈련이 필요한 전체 직원으로 확대됐다.
◆충성도 높이고 숙련인력 채용비용 줄여 = 기업 입장에서 장기 근속한 고령자에게 향상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면 장기 근속자의 기업 충성도가 높아진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충성도가 높은 직원을 활용하면 새로운 기술에 능숙한 값비싼 인력을 채용하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직원과 고용주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다.
거시경제적으로 이 정책은 자격과 기술을 장려해 숙련노동을 강화하고 디지털-AI 전환시대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고령자 정년연장은 디지털-AI 전환의 시대에 생산성과 비용의 비효율을 높인다고 여겨진다. 독일의 사례는 한국의 우려와 대조적이다.
그간 한국의 중소기업은 기술집약적인 독일과 달리 노동집약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만큼 직업훈련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이 크지 않았다. 미래 경쟁력을 향상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다.
초고령화 시대, 디지털-AI 전환 과정에 기술경쟁력을 강화하면서 고령자의 현장 경험을 새로운 기술로 재무장할 필요가 있다.
■글 =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가천대 겸임교수로 있다. 독일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