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종교와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구속영장 발부는 통일교도가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도 충격이 크다. 종교의 정치권력 유착과 타락이 어디까지 갈까. 한 총재는 영장 실질심사에서 “정치에 관심이 없고 정치를 모른다”는 취지의 항변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83세의 고령으로 최근 심장 시술까지 받은 종교의 수장을 인신구속까지 한 것은 ‘정교유착’ 혐의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통일교가 국내외에서 돈 되는 각종 사업을 벌여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식품업과 부동산, 골프장 등 스포츠레저산업, 숙박 서비스업, 언론사, 학교, 문화 등 사업영역이 매우 다양하다. 이런 사업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정치권력의 지원이 필요했고,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궁합이 맞아 그 정도가 심해진 게 아닌가 싶다. 거액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 목걸이와 명품백을 건넸다는 혐의 등은 작은 부분일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 당내 경선과정에서 통일교도들을 10만명 넘게 입당시킨 거래를 했다는 혐의가 사실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김건희 특검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 가입 추정 통일교도가 11만~12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특검 후속 수사와 향후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져야겠지만 통일교 신천지 등 일부 종교단체의 국민의힘 당원 집단 가입설이 진즉부터 떠돌았던 만큼 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근간 위협하는 중대 범죄
저 정도의 규모이면 당 대표 경선 판도를 좌우했을 게 분명하고 이는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중대범죄다. 이런 범죄가 종교집단과 유력 정치세력 사이에 은밀한 거래로 저질러졌다는 것은 정당법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기본적 인식도 안 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기야 2022년 3월 20대 대선도 신천지 통일교 등의 조직적 개입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해야 할까.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종교집단의 정치선거 개입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나 정치 양극화 현상 속에 최근 더욱 심해지는 추세다.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의 구속은 그 흐름 속에 있다. 12.3 비상계엄령 후 ‘세이브코리아’라는 단체를 만들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반대에 앞장섰던 손 목사는 대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의 당선 또는 낙선을 기원하고 촉구하는 발언을 일삼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그를 지지하는 측은 이재명정부의 무도한 종교탄압이라고 강력히 반발한다. 하지만 선거법을 위반하고 예배 중 설교하는 자리에서도 특정후보를 비방하거나 지원하는 발언이 종교 자유로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신교 시민단체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손 목사에 대해 “예배당을 정치 집회장으로 변질시키고 교회를 사회적 갈등의 주동자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회들은 지난 대선 기간 예배 중 특정 후보를 사실상 지원하는 순서를 갖는 등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복음주의 개신교회 등 종교집단이 부정선거음모론과 반중국 정서, 동성애 문제 등을 중심으로 극우 정치세력과 연대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1일 미국 애리조나주 한 스타디움에서 열린 극우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의 추모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보수인사들이 총출동하고, 보수 개신교단체가 대거 참석해 양 세력이 하나로 결합해가고 있는 추세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한미의 극우보수 연대 강화 사회통합 저해
최근에는 미국의 극우 및 보수개신교 세력과 국내의 극우 보수단체의 연대가 부정선거음모론 등을 고리삼아 끈끈해지고 있기도 하다.
9월 5, 6일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5 빌드업코리아’ 행사를 비롯해 한미의 극우인사들이 왕래 및 교류가 잦아진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행사에는 찰리 커크, 모린 배넌, 랍 매코이 목사 등 미국과 한국의 극우와 보수개신교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극우보수적 신앙관과 정치 가치관을 주제로 강연했다(찰리 커크는 이 행사 참석 후 미국으로 돌아간 직후 피살됐다).
국내 보수성향 종교세력과 극우 세력이 결합하고, 또 한미의 극우보수 연대가 강화되는 현상이 우리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퇴행적이고 암울한 결합과 연대를 깨는 길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