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석학 ‘중국행’에 두뇌 유출 논란

2025-09-24 13:00:07 게재

정년연장에 파격적 연구활동 지원책 제시로 접근 국내선 연구기반 확보도 어려워 대부분 활동 중단 민관합동 TF 구성한 정부, 이달 말 인재정책 발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최연소 임용 기록을 세웠던 국내 석학이 중국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두뇌 유출 논란이 재점화됐다. 지난해부터 국내 석학의 중국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정년을 마치고 연구를 원하는 석학을 보호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통신 및 신호처리 분야 석학인 송익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명예교수가 최근 중국 청두 전자과학기술대(UESTC) 기초 및 첨단과학연구소 교수로 부임했다.

송 교수는 1988년 28세로 KAIST 교수에 부임해 당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37년간 KAIST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석학회원을 지내는 등 연구업적을 인정받았다.

학계에서는 올 초 KAIST에서 정년퇴임해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이직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우수 인재 유출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 이영희 성균관대 HCR 석좌교수, 홍순형 KAIST 명예교수, 김수봉 전 서울대 교수 등 정년이 지난 석학들이 잇따라 중국으로 이동했다. 이들에 앞서 해양생물학의 김수암 교수, 메타물질의 이영백 교수 등도 중국행을 택했다.

이들의 중국행을 단순히 개인적 선택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중에는 석학으로 지정됐음에도 정년 후 국내에서 연구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사례도 상당수다.

반면 중국은 대학·연구기관·컨설팅펌 등 다양한 채널을 동원, 국내 석학을 영입하기 위해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성과만 있다면 정년을 70~80세까지 유연하게 연장해주는 조건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양원(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 원사’로 선정되면 차관급 대우와 평생 연구 권한을 부여한다는 당근책도 제시한다.

과학계는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인재 유치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 맞서 범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과학·기술 인재 유출 방지 및 유치 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이달 말 새 정부 첫 인재 정책을 내놓을 계획이어서 과학계의 기대감이 크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산학연 기관장들과의 관련 간담회에서 “양질의 과학기술 분야 일자리 부족, 낮은 보상, 자율성이 낮은 연구 환경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파격적인 과학기술 인재 대책이 필요하다”며 “지금이 글로벌 인재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생각으로, 정부와 민간이 원팀이 되어 대한민국을 국내·외 우수 인재들이 모여드는 과학기술 인재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들도 자체적으로 석학 유출을 막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

포스텍은 올해부터 50세 이상 교수에게 70세까지 연구를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대는 석좌교수 가운데 학문적 업적이 탁월하고 앞으로도 연구·교육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교수를 특임석좌교수로 임용해 정년을 최대 75세까지 늘리는 제도를 도입했다. KAIST는 70세까지 강의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정년 후 교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 대학의 극히 소수 석학들만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마저도 연구활동에 대한 지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과기한림원이 지난 5월 정회원 200명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1.5%가 5년 이내 해외 연구기관으로부터 영입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들 중 82.9%는 중국에서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의 경우 72.7%로 더욱 많은 영입 제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51.5%가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며 그 이유로 석학 활용 제도 부재를 꼽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리더급 연구자 두뇌유출 이유로는 정년 후 석학 활용제도 미비를 꼽는 이들이 82.5%로 가장 많았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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