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위 합의’ 파기, ‘비윤리 국회’ 16개월째
고소고발 난무, 의원징계안만 36개 쌓여
대법원장 청문회·의혹 남발 등 조율 안돼
‘배임죄 폐지’, 당 안팎 강한 반발 불러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같이 만든 ‘윤리위 구성 합의안’도 강성 지지층들의 반발을 버텨내지 못하고 휴지조각이 됐다. 22대 국회는 1년 4개월 동안 윤리특위조차 구성하지 못한 ‘비윤리 국회’가 됐다. 그러면서 국회엔 여야간 각종 고소고발과 윤리위 제소가 넘쳐났다. 이날 현재 의원징계안만 36개가 쌓여있다.
원내대표 합의까지 무용지물로 만든 ‘강성’은 속도전에 기름을 끼얹었다. 법사위는 지도부와 사전 논의없이 대법원장 청문회를 의결해 논란을 빚었다. 부승찬-서영교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 등이 한덕수 전 총리 등과 점심을 함께 했고 이 자리에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재판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는 취지의 의혹을 내놨다. 정 당대표와 지도부는 공식 회의에서 의혹 확인을 건너뛰고 ‘이것이 사실이라면’을 말머리에 달고는 조 대법원장의 사퇴와 청문회를 요구하며 ‘의혹’을 더욱 부풀렸다. 김 원내대표는 의혹제기자들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로 공개 발언했고 논란이 확산됐다. 정 당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대로 ‘조 대법원장 청문회’에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의 유일한 레드팀(비판자)인 친명계(친이재명계) 김영진 의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 대법원장 청문회와 관련해 “(법사위가) 약간 급발진하지 않았느냐”라며 “확인되지 않은 4인(조 대법원장, 한 전 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충식) 회동설을 근거로 청문회를 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대법원장 청문회라고 하는 건 대단히 무거운 주제이고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며 “조금 더 당내 전체 지도부와 상의하면서 진행하고 또 사전에 준비 절차를 잘 거쳐서 그 필요성에 대한 상호의 인식과 동의하에 진행했으면 좋았겠다”고도 했다. 물밑에 있던 불만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친명계 의사를 통해 겨우 새어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기, 가상자산 과세 연기에 이어 부자감세 원상복구 후퇴(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완화 유지)와 함께 ‘배임죄 폐지’가 당 안팎의 반발에 직면한 것도 ‘강성 지지층’의 입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상의 배임죄뿐만 아니라 형법상의 배임죄까지 없애겠다는 입장을 내놨고 이 자리에서 허영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배임죄 폐지의 원칙과 로드맵은 이미 명확하다”고 못 막았다. 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배임죄 의혹 재판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는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상법 개정을 진두지휘하고 배임죄 폐지 논의에도 관여하고 있는 오기형 코스피5000 특위위원장은 지난 23일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배임죄를 폐지한다는 게 완전히 없앤다, 이런 건 아닐 것이다. 어떤 분이 주장하시든 간에”라며 “민사 책임을 강화하고 형사 책임을 합리화하자는 담론 속에서 한도를 두지 않고 논의를 충분히 해보겠다는 문제의식”이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의 ‘배임죄 폐지’가 숙고된 결과가 아닌 ‘개인의 의견’이라는 얘기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진보당, 정의당 등 진보진영 정치권에서도 반발하고 나섰다.
전날 정의당은 “김병기 원내대표는 배임죄 폐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주장하지만, 재벌 총수들과의 약속일뿐이며 김건희의 국정농단에 대한 선택적 면죄부가 될 뿐”이라며 “배임죄 폐지는 결국 상법개정안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경제적·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성 지지층에 기댄 민주당의 독주에 경종이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