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해체’ 밀어붙인 여당…‘과속 후유증’ 과제
이재명정부 첫 정기국회 4대 쟁점법안 처리
상법·사법개혁안 등 대기 … 이견 조율 관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6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29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증감법)까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강제종결→ 법안 표결 절차를 밟아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다수당의 횡포’라며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로써 민주당은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 △정부조직 개편을 반영한 국회 상임위원회 명칭을 변경하는 국회법 개정안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4개 쟁점법안을 처리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에 맞서 ‘1일 1법안 처리’를 예고했다.
이재명정부 출범 후 최대 현안으로 꼽은 검찰청 폐지가 성사됐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법무부 산하에 공소청,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시행 시기는 내년 9월로 1년간 유예기간을 뒀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당시 법안처리에 앞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재명정부의 밑거름이 되어줄 정부조직법이 통과되고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던 검찰 개혁도 힘차게 닻을 올린다”면서 “수사와 기소는 불가역적으로 분리된다. 검찰의 폭력적인 무소불위의 권력은 이제 휘두를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표결 직후 브리핑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형을 부여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사가 이제 사라졌다”고 반겼다.
27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을 통과시켰다. 기존 방송통신위원회를 없애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개편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디어통신위는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대통령이 2명, 여당이 2명, 야당이 3명을 추천하게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로 바뀌는데, 심의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탄핵도 가능하게 했다.
28일 처리한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국회 상임위원회 명칭과 소관 사항을 조정했다. 기존 기획재정위, 환경노동위, 여성가족위 등은 각각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성평등가족위원회’ 등으로 이름이 바뀐다. 29일에는 국회에서 소관 위원회의 활동기한이 종료된 후에도 증인·감정인의 위증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증감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증감법 개정안은 소관 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끝나더라도 증인과 감정인의 위증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위원회의 위원장이 고발하지 않을 경우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연서로 고발할 수 있도록 했고, 고발 기관을 기존 검찰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까지 확대했다. 수사기관은 2개월 내 수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한 차례 2개월 연장이 가능하며, 수사 상황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야당과의 협의에 실패하면서 민주당 주도의 강공의 연속이었는데 이같은 흐름은 연휴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기업의 자사주 소각 등을 규정하는 3차 상법 개정을 정기국회 내에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집중투표제 강화 등의 1, 2차 상법 개정안도 야당의 반대 속에 강행 처리한 바 있다. 또 대법관 증원 등을 다룬 사법개혁안도 11월 중에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 할 수 있는 압도적 의석이지만 법안 처리 과정 자체에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에 담으려 했던 금융당국 개편안은 본회의 처리 직전에 취소했다. 당초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기능을 떼내어 국무총리실 산하의 기획예산처를 만들고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을 흡수해 재정경제부로 재편하는 방안이 담겼다. 금융위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개편하는 한편,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분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금융정책·감독 기능이 4개 기관으로 분산되면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당국 실무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당정대가 비공개 긴급회동을 갖고 이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사전 논의 과정에 매끄럽지 못했다. 앞서 처리된 특검법에 야당 의견을 반영하고 정부조직법 처리에 협조를 구하는 여야 원내지도부간 합의를 이뤘으나 여당 내부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됐다. 결국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다고 해도 야당의 도움없이는 최장 6개월 간 금융당국이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등을 고려해 백지화 했다. 국회 증감법도 수정과 원위치를 반복했다. 고발 주체를 당초 국회의장으로 설정했다가 민주당은 전날 본회의 상정 직전 이를 법제사법위원장으로 변경하는 1차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과 국회의장실에서도 제동을 걸자 하루 만에 고발 주체를 국회의장으로 하는 안으로 복귀했다.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하고 처리에만 급급한 밀어붙이기의 후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번 법안 처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검찰청 폐지에 따른 후속조치가 당초 기대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다. 야당 및 검찰 내부의 반발뿐 아니라 정부여당 안에서도 상당한 견해차가 나타나고 있다. 경찰 수사 사건의 전건 송치나 수사권이 사라진 검찰의 보완수사(요구)권 등을 놓고 민주당 내부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26일 검찰청 폐지 등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후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서 “78년 만의 검찰청 전면 개편은 지금의 검찰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으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라는 국민의 준엄한 요구”라며 “국민 보호에 충실한 검찰개혁,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완성도 높은 검찰개혁을 통해 성공하는 이재명정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