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다수당 독주 견제 장치 모두 무력화 시키나
김병기 원내대표 “필리버스터 남발 끊는 법안 직접 발의”
안건조정위, 이미 유명무실 … 패스트트랙 단축법도 상정
운영위 “국회선진화법, 여야 합의로 도입된 점 고려해야”
절대과반 의석(166석)을 확보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인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들어갔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안건조정위는 수적 우세를 점한 민주당에 의해 이미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다. 또 민주당은 최장 330일이 걸리는 패스트트랙의 처리 기한을 한달 반(75일)으로 대폭 줄이는 법안을 상정해 놓았다. 소수정당이 다수정당의 독주를 지연시키고 숙고의 시간을 갖도록 만든 국회선진법화법의 취지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9일 4개 법안에 대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후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형식적 필리버스터 남발을 끊어 내겠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더는 형식적 필리버스터를 남발하는 국민의힘을 방치할 수 없다”며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고, 소모적 국회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민께서 만족하시는 생산적 정치를 구현해야 할 것”이라며 “빠르게 관련 법을 준비하겠다. 제가 직접 대표 발의한다”고 했다. “민생개혁 발목잡기를 돌파할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께서 고견 달라. 그 뜻을 받들고 적극 반영하겠다”고도 했다. 강성 지지층들의 의견을 반영해 필리버스터 남발을 차단하는 법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회법에서 규정한 무제한 토론은 ‘의원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토론’이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면 의장은 의무적으로 무제한 토론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24시간 이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무제한토론은 중단된다. 민주당은 이 규정을 활용해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지난 총선때 뭉친 위성정당들과 함께 무제한 토론을 24시간만에 중단시켜 왔다.
‘무제한 토론’은 과거 소수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이 수적 우세에 있는 여당의 독주를 지연시키고 대국민 여론전 등으로 활용한 제도였지만 이제는 다수 여당이 된 민주당이 손쉽게 이를 차단할 수 있도록 손을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소수 정당이 다수당의 독주를 지연시키고 한달 정도 숙고하도록 만든 안건조정위는 이미 무력화된 지 오래다. 국회법(57조)에서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90일동안 활동할 수 있게 했다. 6명의 조정위원회는 다수당과 다수당 이외의 정당 소속 의원을 각각 3명씩 배치토록 하고 있다. 위원장은 다수당이 맡고 간사와 협의해 어떤 다수당을 제외한 정당들의 조정위원 수를 정하게 된다. 민주당은 그동안 위원장을 지명하고 3명은 민주당 소속 의원이 맡고 나머지 3자리는 국민의힘 2명과 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비교섭단체 정당 의원 1명으로 구성해왔다.
그러고는 30일 이내에 표결하도록 한 원칙을 활용해 구성 당일에 표결에 들어가 재적 위원 3분의 2이상의 찬성 의결기준에 맞춰 6명 중 4명 찬성으로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왔다.
민주당은 안건의 신속처리(패스트트랙) 규정도 완화할 생각이다. 국회법은 재정의원 과반수가 서명하고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패스트트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임위 법안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되면 18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고 법사위는 90일 이내에 끝내야 한다. 본회의엔 60일 이내에 상정해야 한다. 최장 330일이 걸리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같은 숙고기간이 ‘속도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있다. 진성준 전 정책위 의장은 22대 국회가 들어서자 마자 신속처리대상안건의 심사기간을 위원회 60일, 법사위 15일로 단축해 본회의 상정까지의 기간을 75일로 축소하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진 전 의장은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국회 운영위 전문위원실은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안건신속처리제도 등 국회선진화법에 관한 사항은 2012년 여야합의를 통해 도입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속처리대상안건의 심사기간 축소와 같이 국회선진화법 체계에 변화를 초래하는 사항과 관련해서는 현행 ‘국회선진화법’ 운영체계에 대한 검토 및 평가를 통해 입법정책적으로 결정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지역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은 언제나 다수당이고 여당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제도와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당이 소수야당으로 전락하면 다수당 독주를 막을 방법이 차단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민주당은 기존 시스템을 취지와 원칙에 맞게 잘 운영하고 그 속에서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속도전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