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재무당국 환율정책 합의…일본·스위스 이어 세번째
한미 통화스와프 협의와는 별개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낮아져
미에 외환안전장치 요청 길 열려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가 1일 ‘환율정책 합의’를 발표했다. 이번 합의로 우리나라는 일본, 스위스에 이은 세 번째 대미 환율정책 합의국이 됐다. 이번 합의는 환율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와 관련된 통화스와프 협의와는 별개다.
이번 합의로 우리나라가 미국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한층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환율정책 합의로 통화스와프와 같은 안전장치 마련이 한층 더 용이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환율 투명성 제고로 상호 이해와 소통도 강화해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월 단위로 환율정책 공유 = 기재부는 “지난 4월 열린 ‘2+2 통상협의’에서 미 정부가 환율 분야를 의제로 포함시킨 뒤, 양국 재무당국이 별도의 고위·실무급 협의를 거쳐 환율정책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 따라 한국은 분기별로 공개해오던 시장안정조치 내역을 월 단위로 정리해 미 재무부에 비공개로 공유하고, 연도별 외환보유액 통화구성 정보도 대외 공개하기로 했다.
양국은 이번 합의에서 “효과적인 국제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환율 정책 기본원칙을 재확인했다. 구체적으로 거시건전성 또는 자본이동 관련 조치와 정부투자기관의 해외투자는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했다. 경쟁적 목적의 환율이란 수출 시 자국 상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행위를 말한다.
양국 재무당국은 또 과도한 변동성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으며, 개입은 통화 강세·약세에 관계없이 대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도 동의했다. 양국의 협의 과정에서 미국의 직접적인 원화 절상 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안전장치 요청 명분 = 이번 합의는 지난 4월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2+2 통상협의의 연장선이다. 당시 미 정부의 요청으로 환율 분야가 한미 통상협의 의제에 포함된 이후, 양국 재무당국은 별도의 고위·실무급 협의를 이어왔다.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도 환율정책 협의를 진행해 왔으며, 지난달 12일 일본, 29일에는 스위스와 각각 합의를 마쳤다.
기재부는 “이번 합의 내용은 우리 정부가 확고히 유지해온 환율정책 기본 원칙에 부합한다”며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한미 재무당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신뢰를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합의문 중 눈에 띄는 것은 ‘한미 재무당국이 외환시장 상황과 ’안정‘(stability)을 모니터링한다’는 대목이다. ’안정‘은 최근 합의한 일본, 스위스 사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구다. 우리 측 요청을 미국 측이 수용한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외환시장의 ’안정‘을 함께 살펴본다는 취지다. 이를 발판으로 통화스와프와 같은 안전장치 마련을 협의할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우리는 미국과 관세 협상 과정에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요청을 받게 됐고 외환시장의 ’불안정‘을 이유로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함께 모니터링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해 ’불안정‘에 대한 대책도 함께 모색해달라는 요청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전면적 통화스와프가 아니더라도 유사시 다양한 형태의 외환시장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은 낮아져 = 한편 이번 환율정책 합의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환율조작국’으로 판정받을 가능성은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미국은 2015년 제정된 무역 촉진법에 따라 자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국의 거시 경제와 환율 정책을 평가해 일정 기준에 해당할 경우 심층분석국 또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평가 기준은 ①150억달러(약 20조3500억원)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②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에 해당하는 경상 수지 흑자 ③12개월 중 최소 8개월 간 달러를 순매수하고 그 금액이 GDP의 2% 이상인 경우다.이 중 두 가지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 세 가지 모두 해당하면 심층분석 대상이며 이후 협의 불이행 시 환율조작국으로도 지정될 수 있다.
미 재무부는 최근 이와 별도로 “정량적 기준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환율 개입의 의도·투명성 등 정성적 요건을 함께 고려해 지정할 수 있다”는 방침을 새로 내세운 상태다.
기재부는 “환율 관찰대상국은 정량적 수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평가 시점인 6·11월이 돼야 알 수 있다”면서 “이번 협의는 미국이 기준으로 삼겠다고 한 정성적 요건을 우리도 준수하겠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