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모여 또래 위한 반찬 기부 ‘퇴근길 한끼’

2025-10-01 13:00:04 게재

9월부터 영등포구 교회와 협업

단돈 2000원이면 건강한 음식 2종

“우선 채소를 썰어요. 양파 하나를 도마에 놓고 왼손을 위로 올려 볼게요. 달걀을 쥔다 생각하고 손가락을 오므려서 그대로 양파 위에 얹어보세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한 교회 식당. 김재식 한식조리기능장이 시범을 보이자 최호권 구청장과 청년들이 분주해진다. 눈으로는 명인의 손길을 좇으면서 손으로는 재료를 다지느라 사뭇 진지하다. 같은 조리대에 서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순서를 놓치거나 칼질이 서툰 청년들을 돕는다. 채소를 다듬고 양념에 재워둔 고기를 볶고…. 그렇게 한시간여, 청년들은 몇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토마토 제육볶음과 나초샐러드를 완성해 포장하기 시작했다.

최호권 구청장이 ‘퇴근길 청년한끼’에 참여한 청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소통했다. 사진 영등포구 제공

1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구는 지역 내 교회 5곳과 손잡고 지난달부터 청년들이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도록 지원에 나섰다. 각 교회 자원봉사자와 동별 주민단체 회원, 통장 등이 참여하는 ‘퇴근길 청년한끼’ 사업이다. 청년들은 전문가와 함께 반찬 2종을 만들어 일부는 자신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이웃 또래를 위해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청년인구 비율이 두번째로 높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기획했다. 지난해 각 동별 교회를 순회하며 넓은 조리시설을 갖춘 곳을 공략했고 지난 8월 5곳과 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최호권 구청장은 “청년들 대부분 오피스텔이나 원룸 고시원 등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어 고기 요리는 특히 어렵다”며 “1주일치 밑반찬을 조리해가면 건강한 식사를 하고 외식비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퇴근길 청년한끼’는 요리 배움과 반찬 나눔 두가지로 진행된다. 요리배움에 참여한 청년들은 자신과 이웃이 먹을 반찬을 직접 만든다. 청년들이 요리하는 동안 자원봉사자들이 같은 반찬을 50인분 만들어 기부한다. 반찬 나눔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퇴근길에 교회를 방문해 음식을 챙겨가면 된다. 배우고 나눠가는 청년 모두 구 사회복지협의회에 2000원 참가비를 내야 한다.

지난달 하순 첫 요리 배움에는 인근에 거주하거나 동네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8명이 참여했다. 양평2동 통장과 교회 자원봉사자 등 10명에 ‘설거지 전문’이라는 최호권 구청장도 함께한 참이다.

양평동 주민 박세빈(25)씨와 신길동에 사는 최우진(23)씨는 부모님 품을 떠날 때를 대비해 참가신청을 했다. 박씨는 “재료가 좋고 요리를 해놓으니 맛있어 보인다”며 “다른 사람들이 먹을 거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씨는 “곧 독립해야 해서 배워보고 싶었다”며 “의미도 있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양평동까지 출·퇴근을 하는 김정환(37)씨는 ‘혼밥’을 자주 하는 1인가구다. 퇴근길에 손맛을 발휘하기 위해 신청했다. 그는 “짝궁을 잘 만나서 요리가 너무 잘 된 것 같다”며 “우리가 만든 반찬을 가져가시는 분도 맛있게 잘 먹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월 양평동과 영등포동에 이어 이달에는 신길동과 대림동에서 청년한끼가 진행된다. 11월에는 다시 양평동과 영등포동 그리고 대림동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에 반찬을 만든다. 요리 배움에는 매회 10명, 반찬 나눔에는 50명이 참여하게 된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단순한 요리 강습을 넘어 청년들의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돕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며 “공유주방을 곳곳에 확대하고 있으니 청년들이 퇴근 후나 주말에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눴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 구청장은 “청년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정책을 꾸준히 펼쳐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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