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청정국’ 지위 잃은 한국 ‘수출국’ 전락하나

2025-10-01 13:00:05 게재

‘물뽕’ 원료 GBL 미국 수출

한미 공조수사로 일당 검거

국제 마약 밀매 조직과 공모해 이른바 ‘물뽕’으로 불리는 마약류의 원료인 감마부티롤락톤(GBL)을 대량으로 밀수출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국내에서 1군 임시마약류 지정 물질을 대량으로 수출한 일당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 한국이 자칫 ‘마약 수출국’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달 30일 경기남부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임시마약류 수출 혐의로 30대 여성 A씨와 그의 사실혼 관계 남편인 20대 등 3명을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로 A씨의 친구 3명도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자신들이 운영하는 의왕시 소재 미용용품 수출업체에서 시가 159억원 상당의 GBL 8톤을 72차례에 걸쳐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지에 밀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8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이들은 호주에도 23kg을 밀수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미용용품 수출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국제 마약 조직원의 제안을 받고 속눈썹 접착제 등에 포함된 GBL을 미국에 밀수출했다. 이들이 수출한 GBL은 멕시코 카르텔과 연계돼 미국 전역에 유통됐다.

호주 연방경찰이 이들의 첩보를 한국 경찰과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공유하면서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A씨 일당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GBL 1.3톤을 압수하고, 범죄 수익금 18억2000만원을 기소 전 추징보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 수사기관뿐 아니라 국내 유관기관과 협업해 마약류 수출 및 반입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DEA는 브리핑 자료에서 “전례 없는 성과를 가져온 한국 경찰청의 전문성과 수사 역량에 감사드린다”며 “미국 내 유통망과 공범에 대해 가까운 시일 내 추가 단속이 예상된다”고 했다.

압수한 마약 원료물질 미국에서 활동하는 국제 마약조직과 공모해 이른바 ‘물뽕’이라고 불리는 GHB의 원료물질인 GBL을 미국과 호주 등지로 수출한 일당이 경찰과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공조수사로 검거됐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열린 합동 브리핑에서 소개된 압수물 영상. 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한편 경찰 등에 따르면 한국은 10년 전 마약청정국 지위를 상실했다. 유엔은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을 마약청정국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2015년 23.1명으로 이미 기준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44.7명을 기록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4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총 2만322명이다.

이는 마약사범 집계가 처음 시작된 40년 전인 1985년 당시 1190명이 검거된 것에 비하면 20배 가깝게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검거된 사례는 실제 범죄 행위와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마약 범죄의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비율)을 검거 사례의 28배로 보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지난해 기준 국내 마약사범은 64만4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 데에는 디지털 기술 발전이 역할을 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다크웹, 암호화폐 등을 이용하는 판매자는 신원을 숨긴 채 전국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마약을 광고·판매하는 것이 쉬워졌다. 구매자는 상대적으로 신분 노출 위험이 낮은 ‘던지기’ 수법을 통한 비대면 구매가 가능해졌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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