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이후 달라졌다 …“내 생각과 다른 결과도 수용” 91.5%

2025-10-10 13:00:09 게재

신고리원전 재개·국민연금 개혁 방향, 숙의 전·후에 크게 변화돼 주목

숙의 거치면서 충분한 정보습득 … 분임토의·전문가 질의응답 등 도움

“모든 생각은 타당하다” “한 사람 말할 때 끼어들지 않는다” 토론 원칙

국회 법사위, 항의하는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이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간사 선임의 건 관련 무소속 최혁진 의원 발언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공론화’는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편향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보여줬다.

지난해 이뤄진 국민연금 공론화위원회는 국민연금 제도의 큰 틀인 소득보장(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과 재정안정(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을 놓고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제도를 재설계할지를 고민했다.

숙의 이전의 1차 조사(493명)와 숙의 이후의 3차 조사를 보면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은 36.9%, 44.8%에서 56.0%, 42.6%로 역전됐다.

소득보장론을 선택했던 이들 중 숙의를 거쳐 36.5%가 재정안정론으로 이동했고 재정안정론을 선택했던 응답자 중에서는 절반이상인 53.4%가 소득보장쪽으로 옮겨갔다. 모름으로 답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44%가 소득보장론으로, 43%가 재정안정론으로 흩어졌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17년 7월부터 시작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호기와 6호기의 건설 재개 여부’를 묻는 공론화에서도 숙의 전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론화 시작 직전에 실시한 설문조사(471명)에서는 공사 재개, 공사 중단, 판단 유보의 비율이 각각 36.6%, 27.6%, 35.8%였지만 분임토의, 전문가와의 질의응답, 동영상 교육 등을 마친 이후엔 공사 재개 57.2%, 공사 중단 40.5%, 판단 유보 3.3%로 나왔다.

공사 중단을 주장했던 사람들의 16.8%가 공사 재개로 옮겨간 게 상황변화를 만들었다. 공사 재개를 주장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5.8%만 공사 중단으로 바꾸었다. 판단 유보했던 이들중 45.3%, 50.3%는 공사 중단과 공사 재개로 이동했다.

◆자기학습→전문가 발표→질의응답→분임토의 = 이들은 어떤 숙의 과정을 거쳤을까. 먼저 자기 학습이 이뤄졌다. 국민연금과 원전에 대한 사전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자료와 동영상(이러닝 포함) 등이 제공됐다. 또 2박3일 정도의 숙박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발표에 이은 질문과 답변, 분임토의가 이어졌다. 시민참여단의 전용 홈페이지가 개설돼 각종 자료들을 누구나 언제든 볼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했고 질의와 답변도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도록 했다. 권역별 토론회, 방송사 TV토론회 등도 진행돼 패널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두 공론화 이후 높은 효능감이 확인인됐다. 국민연금과 신고리 시민대표단 중 98.6%와 99.0%가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면서 연금제도(에너지 정책)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고 했고 95.2%, 91.6%는 “공론화 과정에 참여하면서 정치사회적 사안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98.7%와 92.5%는 “국회(정부)는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96.0%, 94.5%는 “다음에 시민대표단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시민대표단의 91.5%는 “시민대표단의 선택 결과가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 결과를 신뢰할 것”이라고 했다.

전체 숙의 과정 중 가장 도움이 된 숙의 과정으로는 ‘분임토의’가 27.3%로 가장 많이 꼽혔다. 그 뒤로는 ‘전문가 발표’(26.0%), ‘전문가 질의 응답’ (24.5%)이 이어갔다. ‘자료집’(12.9%), ‘이러닝’(8.8%), ‘홈페이지 활용’(0.6%) 등 간접적인 방법은 상대적으로 숙의효과가 적은 것으로 평가됐다.

◆“끝까지 듣는다” 규칙 = 토의 규칙으로는 △모든 생각은 타당하다 △말할 때와 들을 때 서로 존중한다 △한 사람이 말할 때는 끼어들지 않고 듣는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끝까지 마음을 다해 듣는다 등을 제시해 놨다.

‘집단지성의 힘’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는 평가가 많다. 신고리 시민대표단으로 참여한 박남문씨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각 주장들이) 많은 사실들 중의 하나로 이해한다”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는 수긍하고 따를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는 이미 공론화 과정에 투영되어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시민대표단에 참여한 A씨는 “항상 뉴스와 인터넷기사를 보며 대한민국 사회가 크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며 “커뮤니케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쉬워진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분열되었다는 점이 느껴져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분임토의는 저의 의사결정에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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