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케네디 장관 시대의 백신과 자폐증 논란
수십년 간 백신에 반대해 온 민주당 명문가 후예인 케네디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 지난달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기(Make America Healthy Again, MAHA)’ 운동의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120개 이상의 이니셔티브가 포함되어 있으며 과학 연구 강화, 식품 시스템 개혁, 예방 중심의 보건정책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MAHA 보고서는 미국 보건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과학적 근거의 신뢰성 문제, 산업 로비의 영향, 공공 신뢰도 하락 등 여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건강한 식습관 확산과 만성질환 억제라는 의제는 양당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백신에 관한 입장은 공화당 내부에서도 분열을 초래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케네디의 백신 회의론 연합
2024년 케네디는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트럼프 후보가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을 때, 자신 가족의 정치적 암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케네디는 트럼프를 최종 지지했다. 민주당이 바이든에서 해리스로 후보를 바꾼 지 약 한달 만에 이뤄진 케네디의 지지는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양당 사람들은 미국의 주요 백신 회의론자이자 민주당 정치 명문가의 후예인 케네디가 민주당이 경멸하는 사람을 지지하기 위해 가족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케네디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도 의학 저널 란셋(The Lancet)에 발표된 1998년 홍역·볼거리·풍진백신이 자폐증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2010년이 되어서야 결국 철회되었고 주요 저자인 웨이크필드 박사는 의사 면허를 잃었다.
2007년 트럼프는 마라라고에서 학부모 옹호 단체인 오티즘 스픽스(Autism Speaks)를 위한 모금 행사를 열었다. 그는 아기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은 주사를 맞고 있다는 이론을 세웠고, 그와 그의 아내 멜라니아가 당시 거의 2살이었던 아들 배런의 백신 접종 일정을 늦췄다고 말했다.
케네디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트럼프 연합의 중요한 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케네디가 작년에 만든 ‘MAHA’ 슬로건을 사실상 수용했고, 그에게 정책 수립의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다.
상원이 인준한 지 불과 한달 만에 케네디 장관이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이사 수잔 모나레즈를 축출하자 CDC 고위 관리 3명이 사임했다. 이에 공화당원들이 백신에 대한 케네디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한 격렬한 상원 청문회는 트럼프와 케네디의 복잡성과 긴장을 부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케네디를 명확히 지지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가운데 상반된 메시지를 내놓으며 백신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 모습이다.
아동기 백신 의무화를 종료하려는 플로리다주의 움직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대통령은 백신이 자폐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홍보하는 비디오를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 이는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거의 20년 동안 그가 지지해 온 이론이다. 이 비디오는 거의 모든 소아 백신에서 제거된 수은 기반 방부제에 초점을 맞췄다.
백신 회의론자들로 재구성된 예방접종관행자문위원회(ACIP)는 9월 18~19일 케네디 장관 체제 하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를 열었다. 수개월간 주목을 받아왔던 이 회의는 국가의 표준 예방접종 일정을 변경할지를 논의하면서 기존 백신 프로토콜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회의는 두 건의 표결을 통해 구체적 결론을 도출했다. 패널은 4세 미만 어린이를 위해 기존에 한 번에 맞던 MMR(홍역, 볼거리, 풍진)과 수두 백신을 두 번으로 나누기로 결정했고, 코로나 백신의 권장 대상을 65세 이상과 특정 질환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반면 B형 간염 백신 권장 사항에 대해서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된 점과 수두 관련 조정 외에는 전체 일정이 당분간 유지된 것은 백신 정책의 급격한 혼란을 어느 정도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백악관에서 시작된 자폐증 공방
9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일반적으로 타이레놀이라는 브랜드명으로 알려진 일반의약품 아세트아미노펜을 미국 자폐증 진단 증가의 중요한 요인으로 비난했다. 자폐증 연구자들은 이 둘을 연관시킬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의사와 연구자들은 아세트아미노펜이 발열 및 만성 통증과 같은 질환에 대한 치료를 원하는 임산부에게 여전히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의사와 연구자들은 또한 여성이 임신 중 해열제를 피하는 데 “단점이 없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문제를 제기했다. 임신 중 해열제를 피하는 것이 무조건 안전하거나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위험할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복잡한 신경학적 및 발달 질환이다. 증상은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 작용 및 감각 처리의 어려움을 중심으로 모여 있으며 이 상태는 동시 발생하는 장애 및 기타 요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2000년부터 CDC가 추적해온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진단율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장애의 정의가 확대되고 조기 식별 및 진단 노력이 강화된 결과로 해석된다. 가장 최근의 CDC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미국 8세 어린이 31명 중 1명이 ASD를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2000년 150명 중 1명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케네디 장관은 오랫동안 ASD 증가의 원인을 외부 환경적 요인, 특히 백신이나 다른 환경적 독소로 돌리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종종 과학적으로 부정확하거나 논란이 많은 진술들을 포함하고 있어, 관련 연구와 상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작년에 미국과 유럽의 연구팀은 1995년에서 2019년 사이에 스웨덴에서 태어난 250만명의 아기의 기록을 검토했다. 자궁에서 아세트아미노펜에 노출된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자폐증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5%에서 7% 더 높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연구원들이 그 아이들을 형제자매와 비교했을 때 어머니가 임신 중에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같은 부모의 자녀가 자폐증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논문은 또한 임신 중에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한 여성이 당연히 발열이나 만성 통증과 같이 약물이 필요한 종류의 질병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또한 자폐증이나 기타 신경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거나, 기존 정신건강 질환이 있거나, 다른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연구팀은 발견했다. 즉, 여성이 치료를 위해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는 근본적인 건강 원인은 진통제 자체보다 자폐증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공중보건 신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UCLA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자폐증 연구원인 캐서린 로드는 “자폐 아동과 성인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고, 부모가 임신 중에 타이레놀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새로 임신한 여성이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결과가 현실이라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케네디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논리를 앞세워 공중보건 신뢰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백신과 자폐증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된 가운데 보건당국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을지가 케네디 장관 체제의 핵심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