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불안, 경희대·서울대 전형안 돌파구 될까
경희대·서울대 2028 대입 전형 계획 발표 … 수능 영향력 축소·교과평가 확대로 교육과정 충실 이수 강조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고1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내신 5등급제 개편과 수능 선택과목 폐지 등 큰 변화를 동반하면서 학생 학부모 교사의 불안을 키웠다. 교육부가 지난 9월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대와 서울대가 잇달아 2028 대입 전형 계획 주요 사항을 발표했다. 두 대학 모두 수능 영향력을 낮추는 대신 학생부 교과평가를 강화하고 교육과정 충실 이수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구체적인 전형 방법 제시로 학생과 학교에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보고 두 대학 전형안의 의미를 들여다봤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흥미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이수하는 제도다. 현 고2·3보다 과목 수를 늘려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했다. 교육과정의 변화에 맞춰 내신과 수능도 손봤다. 내신을 5등급제로 개편했다. 수능은 선택 과목 없이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바뀐다. 특히 탐구는 고1 때 배우는 공통 과목인 ‘통합사회1, 2’ ‘통합과학1, 2’에서 출제한다.
올해 고1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9월 25일 개선안을 내놓았다. 학점당 보충 지도시간을 5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이고 출석률 2/3 미만 학생 추가 학습은 100%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세특 기재 최대 글자 수도 1000자에서 500자로 줄였다. 2026학년 기준 중등 교원을 1600명 증원해 7100명을 신규 채용하고 대학 강사 등 외부 인력 활용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교원 3단체는 정부 개선안이 근본적 문제 해결책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 수준이라며 반발했다. 가장 큰 쟁점인 학점 이수 기준 완화가 이번 대책에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이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소관이라는 입장이다.
◆불안의 뿌리는 대입, 경희대·서울대가 방향 제시 = 한 교육계 인사는 “고교학점제는 2018학년 고1부터 과목 선택권이 부여됐고 학교 현장·교육과정·대입은 꾸준히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며 “세간에선 고교학점제를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식해 논란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시스템적 부담을 덜어내고 보면 부정적 여론의 근원은 사실 대입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일부 이해 관계자의 불안 확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고교학점제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부정적 평가는 상당 부분 대입과 연동돼 있다. 내신과 수능이 함께 큰 변화에 직면하면서 고교 선택부터 과목 선택, 주력 전형, 학교생활 전반의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대와 서울대가 잇달아 2028 대입 전형 계획 주요 사항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경희대는 9월 23일, 서울대는 9월 29일 각각 홈페이지에 전형 계획을 게시했다. 구체적인 전형 방법이 공개됨에 따라 무엇이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서울대는 수시 지역균형 추천 인원을 2명에서 3명으로 확대하고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폐지했다. 정시 지역균형전형은 폐지하고 일반전형 1단계 선발 인원은 2배수에서 3배수로 확대했다. 2단계에서는 교과역량평가 반영 비율을 20점에서 40점으로 확대했다. 수능 반영 방법도 표준점수 대신 1단계는 등급, 2단계는 백분위를 활용한다. 지원 문턱을 낮추는 한편 수능 영향력을 축소한 것이 핵심이다.
안성환 한국소셜벤처협회 교육이사(전 대진고 교사)는 “서울대 전형안을 보면 정시에서 실질적으로 수능의 힘을 덜어내려 했다”며 “일반전형 2단계에서 수능과 교과역량평가 비율이 6대4로, 현재 8대2보다 교과역량평가로 수능 성적 불리함을 상쇄할 여력이 커졌다”고 분석한다.
수시에서는 일반전형과 지역균형 모두 SNU 역량평가 면접을 새롭게 도입한다. 답이 없는 열린 문항을 제시하고 학생 답변에 기반해 질문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서울대는 이 면접이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관련 깊다고 명시했다.
김용진 경기 동국대부속영석고 교사는 “지식이 아니라 역량 중심 면접으로 바뀐다”며 “정답이 없는 지문을 읽고 문제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스스로 도출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고 설명한다. 특정 교과가 아니라 고교에서 배운 여러 과목을 엮어서 해결해야 하는 만큼 학교 수업의 토의·토론·실험·실습 등에 적극 참여한 학생이라면 관련 역량을 쌓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경희대는 수시·정시 모두 전형을 다각화하는 한편 수시 최저 기준 및 내신 부담을 완화하고 정시 수능100%전형 선발 규모를 축소했다. 학생부교과전형은 교과·비교과(출결·봉사) 70%에 교과종합평가 30%로 평가한다. 교과 정량 평가 시 탐구 교과의 진로선택 과목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상위 성적을 반영한다. 석차 3등급, 성취도 A를 받았다면 성취도 A를 1등급으로 반영하는 식이다.
김 교사는 “5등급제로 바뀌면서 1등급이 아니면 불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는데 경희대 교과전형 방식은 성적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필요한 과목을 이수하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종합전형은 서류형과 면접형으로 이원화했다. 신설한 서류형은 자율·자유전공학부 인원을 다수 모집하며 학생부 교과 평가 시 석차등급을 배제하고 성취도를 적극 활용한다. 정시는 수능형과 수능·학생부형으로 나눠 선발한다. 신설한 수능·학생부형은 수능 90%에 학생부 10%를 반영하며 자연계열 지원자가 수학·과학 교과 이수 기준을 충족하면 가점을 부여한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팀장은 “성취도 반영으로 학생 내신 부담은 낮추되 출결과 봉사까지 평가에 반영하며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할 수 있도록 2028 대입을 설계했다”고 밝힌다.
◆교육과정과 대입 연결, 일관된 정책이 관건 = 경희대와 서울대의 2028 대입 전형은 내신이나 수능 등 성적 부담은 낮추면서 학교 교육과정 충실 이수를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대는 2023학년 정시부터 교과 정성 평가를 도입했고 경희대도 2023학년부터 교과전형에서 교과종합평가를 반영했다. 대입 전형에서 불안할 만큼의 대변화는 현재로선 찾기 힘들다. 그간 누적돼온 결과를 바탕으로 2028 대입을 대비할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의 정책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복수의 교육계 관계자는 “흥미·진로에 맞는 과목 선택을 강조하면서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는 등 방향이 다른 정책을 내놓는다면 고교학점제나 2028 대입은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며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일관적인 정책 집행이 중요하다”고 경고한다.
◆서울대 정시, 교과역량평가 실질 영향력 확대 = 서울대 2028 대입에서 주목할 점은 정시 평가 방식의 변화다. 3학년 2학기까지 과목 이수 이력과 성취도, 학업 수행 내용, 출결 등을 살펴 교과역량평가를 실시한다. 일반전형 2단계 평가에서 수능 60점, 교과역량평가 40점으로 배분해 교과역량평가 비중이 현재 20점에서 두 배로 늘었다. 수능 성적만으로는 합격을 장담하기 어렵고 3년간 학교생활 충실도가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안 교육이사는 “서울대가 수능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낮추고 학생부 정성 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며 “이는 고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해석한다.
의대·수의대 일반전형은 적성·인성 면접 반영 비율이 기존 결격 사유 판단 수준에서 20%로 대폭 확대됐다. 수능 반영 비율은 80%에서 60%로 축소됐다. 단순히 성적 우수 학생이 아니라 의료인 자질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다.
수시 면접도 변화했다. 기존 지역균형은 서류 확인 및 기초 소양 중심이었고 일반전형은 제시문 면접이었다. 2028 대입부터는 둘 다 SNU 역량평가 면접을 실시한다. 고교에서 배운 여러 과목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경희대, 성취도 활용으로 과목 선택 부담 완화 = 경희대 전형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탐구 진로선택 과목의 평가 방식이다. 상대평가 등급과 절대평가 성취도 중 상위 성적을 반영한다. 어떤 학생이 도전적 과목을 선택해 수강생 수가 적어 등급이 불리하게 나왔어도 성취도가 높다면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 내신 등급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진로에 필요한 과목을 적극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또한 자연계열 지원자에 대해서는 교과 이수 권장 과목 이수 여부를 정성 평가에 반영한다. 핵심 과목은 중요하게 긍정평가하고 권장 과목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긍정평가한다. 대학이 필요로 하는 기초 학업 역량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되 학생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학생부는 3학년 2학기까지 이수 과목 중 상위 18개 과목만 반영한다. 수능 위주 전형의 성격은 유지하면서도 교육과정 영향력을 적절히 반영했다. 자연계열 지원자가 수학·과학 교과 이수 기준을 충족하면 가점을 부여한다. 임 입학사정관팀장은 “수시·정시 각 전형 유형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교육과정과 대입을 최대한 연결했다”고 설명한다.
◆대비 전략, 조급함보다 기본 역량 축적이 우선 = 전문가들은 2028 대입이 현재 교육과정의 연장선에 있다고 강조한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그간 누적된 결과를 바탕으로 설계된 만큼 현재 학교생활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안 교육이사는 “학부모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유불리를 판단해 전략을 찾고 싶어 하지만 대입에서 가장 큰 변수는 학생”이라고 말한다. 학생의 학교생활, 선택 과목, 성적, 흥미, 적성 등에 따라 지망 대학과 전형이 달라지고 유불리도 판단할 수 있다. 최소한 고2까지는 판단을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틈새 전략조차 준비가 된 학생에게만 유효하다.
김 교사는 “학교 수업의 토의·토론·실험·실습·관찰·조사·발표 등에 적극 참여하면 대학이 요구하는 역량을 쌓을 수 있다”며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에 매달리기보다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비”라고 조언한다.
경희대와 서울대에 이어 다른 대학들도 순차적으로 2028 대입 전형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주요 대학들의 전형 계획이 공개되면 전체적인 방향성이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기수 기자·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