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미국 믿지 말라’던 민요를 되뇌는 이유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왜놈 일어나고 되놈 되나온다. 조선아 조심해라.” 구한 말과 해방정국 민중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민요 가사다. 미국(서방)과 소련(공산권) 모두를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혼란할 시대일수록 스스로 힘과 지혜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적극적 해석도 가능하겠다.
한물 간 이 구전민요가 다시 되뇌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행정부 출범과 요상한 관세협상이 불을 당겼다. 동맹·혈맹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실체가 발가벗겨지고 있어서다.
웃기게도 미국의 관세압박은 동맹국일수록 더 거세다. 유럽연합(EU)과 협상을 끝낸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만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적자 책임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당하는 우리로선 억울할 따름이다. 법도 통하지 않던 옛 시골 동네깡패의 ‘보호비 갈취’가 딱 떠오른다.
과연 한국은 미국의 재정적자에 책임이 있는 것일까. 3500억달러(약 500조원)란 천문학적 보호비를 바쳐야 할 정도로.
2024년 미국의 적자 추정치는 1조8000억달러(약 2576조원) 규모다. 재정적자의 직접원인은 국방비나 복지프로그램 지출증가와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비용 증가다. 다른 곳도 아닌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분석이다.
특히 이자 비용만 9500억달러로 전년 대비 34% 늘어 군비지출 총액을 넘어섰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재정정책의 오래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표심 눈치에 국내 재정개혁을 못하니, 동맹국을 압박해 이를 만회하려는 몸부림이다.
미국 제조업의 후퇴 역시 미국 스스로 결정한 결과다. 돈 안되는 제조업에서 손 떼고, 정보통신과 바이오·군수산업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에 올인한 결과다. 덕분에 빅테크와 글로벌 바이오·군산복합체는 모두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세계사적인 자연스런 흐름이다. 한국도 섬유산업과 같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전통 제조업은 대부분 중국에 자리를 내줬다.
지난 8월 말 피 말리는 미국과의 관세정상회담 직전 이재명 대통령은 ‘때 아니게’ 자주국방을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군대는 장병 병력에 의존하는 과거형 군대가 아니라, 유무인 복합체계로 무장한 유능하고 전문화된 스마트 정예강군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시각에 대해선 ‘굴종적 사고’라고도 했다.
왜 하필 관세협상이 한창이던 그 시기에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거론했을까. 비상식적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프 관세압박에 맞설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민하며 나온 언급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