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분노·남탓으론 못이긴다

2025-10-20 13:00:04 게재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

2016년 9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가 연설 중 인용해 꽤 화제가 됐던 말이다. 당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거칠고 직설적인 행태를 겨냥한 것이다.

‘품위있게 가자’는 주장에 대해 그녀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응답은 분노나 복수심이 아니라 해결책을 반영해야 한다. 분노는 그 순간에 기분이 좋을 수는 있지만 공을 앞으로 보내지는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가 1주를 넘겼다. 통상 국감은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야당의 시간’이다. 그런데 탄핵 대선으로 새정부가 출범한 지 4달 남짓 상황이라 전직 여당인 국민의힘이 심판대에 올라야 하는 정반대 상황이다. 국감 첫주 여야는 상대에 대한 무분별한 행동으로 국정감사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리위 제소와 경찰 맞고발이 이어진다. 한 평론가는 “국감장이 유튜브 쇼츠 경연장이 된 것 같다”고 한탄했다.

출발부터 여당은 ‘내란 청산’을, 야당은 ‘독재 심판’을 목표로 내건 국감이니 이런 충돌은 예상됐다. 적대감을 부추기는 여야의 공세는 “왜 보다 강력하게 밀어붙여 상대를 굴복수준으로 몰아가지 않느냐”는 강성지지층의 목소리를 더 키운다.

이들의 득세는 ‘정권에 국회다수 의석까지 다 가진 여당이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야당시절은 생각 안하나’ 혹은 ‘내란혐의로 탄핵 당하고 대선에서 져 정권까지 내준 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나’고 생각하는 이들을 점점 밀어낸다. 여야가 중도나 스윙보터를 늘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감 시작부터 여당 주도로 조희대 대법원장 문제로 떠들썩하더니 중반부 들어가면서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겨냥한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선을 한달 앞둔 상황에서 조 대법원장의 선택이나, 국감을 목전에 두고 총무비서관을 부속실장으로 옮긴 대통령실의 인사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의도를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유튜브 제목달기나 소리지르기 만으로는 곤란하다. 물론 ‘계엄 당일 서류를 못봤다’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꼼짝 못하게 한 CCTV 영상 같은 ‘팩트’로 뒷받침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분노나 복수심에 찬 고성보다 차분하게 의구심을 풀어가는 질의가 더 돋보인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마약 게이트’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권한을 주고 제대로 수사해보라고 한 공직자들의 장외 입씨름은 정말 꼴불견이다. 권한 갖고 일하고 결과를 가지고 평가 받으면 된다. ‘능력이 있긴 한가’라는 의심을 자초한다. 남 탓만 하다가 망한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명환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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