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총력대응 예고했지만…쌀값 25% 급등 밥상물가 ‘들썩’
가을장마·환율·공급난 3중고에 먹거리 가격 급등세
5년간 물가 16.2% 오를 때 가공식품은 22.9% 상승
정부 “할인·비축 확대” 공언했지만 실효성 여전히 논란
이 대통령 “시장폭리 방치 안돼” 공정위 담합조사 착수
추석 연휴가 지났지만 먹거리 물가 상승세가 심상찮다. 최근 기상 악화로 농산물 생육이 지연되면서 밥상물가가 진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통상 먹거리 물가는 매년 추석 직전에 성수품을 중심으로 크게 오름세를 보였다가 이 시기가 지나면 안정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올해는 추석연휴 뒤 오히려 밥상물가 오름세가 더 커지는 모양새다.
햅쌀 출하가 늦어지며 쌀값이 1년 만에 25% 급등한 것도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한우와 돼지고기, 사과 등 주요 먹거리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최근 5년 사이 빵·과일·유제품 가격은 30% 이상 뛰며 서민 부담을 키우고 있다.
◆쌀값 마저 올랐다 = 2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쌀 20킬로그램(㎏) 평균 소매가격은 6만7351원이다. 한 달 전(6만1235원)보다 9.98%, 1년 전(5만3612원)과 비교하면 25.6% 급등했다. 지난 7월 ‘6만 원대 마지노선’을 넘은 이후 대형마트에서는 8만~10만 원대까지 치솟고 있다.
정부의 작년 비축 매입 정책과 올해 가을장마로 인한 출하 지연이 겹쳤다. 정부가 지난해 수확기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비축분 36만톤 외에 26만톤을 추가 매입, 시장 유통 재고가 급감했다. 여기에 올해 들어 잦은 비로 쌀 수확시기가 늦어지며 공급량이 부족해졌다.
축산물 가격 오름세도 커지고 있다. 지난 18일 기준 한우 안심 1등급의 평균 소매가격은 100그램(g)당 1만4261원으로, 전년(1만2886원)보다 10.7% 올랐다. 등심은 3.9%, 국거리용 양지는 최대 10.9% 비싸졌다. 지난해 한우 도축 마릿수가 역대 최대치인 99만 마리를 기록한 뒤 올해는 92만9000마리로 감소하면서 공급이 줄어든 결과다.
‘국민 식단’인 돼지고기도 가격 상승세가 만만찮다. 삼겹살은 100g당 2872원으로 전년(2687원) 대비 6.9% 상승했고, 목살은 5.1% 오른 2686원이다. 국내산 재고량이 줄고 국제 시세가 오르며 수입량이 감소해 내수 가격이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과일값도 급등했다. 사과(홍로) 10개 평균 소매가격은 2만6865원으로 1년 새 16.4%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농축산물 가격 오름세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란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9월 생산자물가지수를 보면 9월 농축수산물 생산자물가는 축산물(2.0%) 농산물(0.5%)이 올라 전월 대비 0.4% 올랐다. 특히 쌀(4.7%), 상추(38.9%), 쇠고기(6.9%), 돼지고기(3.3%)가 크게 뛰었다. 한국은행은 “쌀 같은 경우는 생산량이 감소한 상황 속에서 햅쌀 출하가 안 됐고, 9월 조생종 쌀은 강우로 수확과 출하가 늦어지고 있다”며 “상추도 출하 시기 강우로 수확에 차질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통상 생산자물가 상승은 수개월 뒤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가공식품 상승세도 부담 = 밥상물가의 또 다른 지표인 가공식품 가격도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20~2025년 9월)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가격은 22.9% 상승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6.2%)을 6.7%p 웃돌았다. 특히 빵류는 38.5%, 과일 35.2%, 우유·치즈·달걀 30.7%로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국수(44%), 떡(25.8%), 라면(25.3%), 커피(43.1%) 등 일상식품 전반이 폭등했다.
코로나19 이후 국제 원자재 공급 차질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밀 수출 제한, 국제 운송비·에너지 비용 상승, 원·달러 환율 급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작년과 올해 이상기후로 농작물 작황이 부진하며 공급난이 심화됐다.
심상찮은 밥상물가에 정부 대응도 총력전이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30일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시장의 폭리를 방치하지 않겠다”며 식품업계의 담합과 독점 구조를 직접 겨냥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설탕·육류·달걀 등 주요 품목에 대한 대규모 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이달 중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의 설탕 담합 혐의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한다는 방침이다. 설탕담합 사건은 이미 지난해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큰 진척이 없었다. 하지만 이재명정부 출범 뒤 다시 속도를 내면서 최근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목우촌·도드람·CJ피드앤케어 등 육가공업체 6곳의 돼지고기 가격 담합 조사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 대통령이 언급한 달걀·밀가루 유통업체에 대해서도 조사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부도 전방위 대응 나서고 있지만 =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김장철을 앞두고 농산물 가격 급등과 서민 체감물가 불안을 막기 위한 정책대응가 우선 순위로 떠올랐다. 기재부는 전날 이형일 1차관 주재로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먹거리·석유류 등 주요 품목별 가격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이형일 차관은 모두발언에서 “잦은 강우와 급격한 기온 하락 등으로 일부 농산물 가격 변동이 우려된다”며 “비축물량 방출과 할인행사 확대, 생육관리 강화를 통해 수급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일부 외식 프랜차이즈의 음식 중량 축소 등 ‘슈링크플레이션’(제품 축소 물가) 문제에 대해 “연말까지 근절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농식품부와 농진청, 지자체, 농협 등은 사과·단감 등 과일류 출하 회복 전까지 할인판매를 지속하고, 배추·무·마늘 등 김장재료용 품목은 정부 비축물량을 최대 확보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을 11월 초 발표해 소비자 장바구니 부담 완화를 추진한다. 또한 한우(10.28~11.9) 최대 50% 할인, 돼지고기·젓갈류 등 수육용·김장용 품목 할인행사도 잇따라 열린다.
이 차관은 “가을 지역축제와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바가지요금 등 불공정 인상을 막기 위해 지자체와 협력해 외식·숙박요금 현장 점검을 강화하라”고도 주문했다. 정부는 이미 10월 1일부터 민관합동 물가점검반을 가동해 주요 관광지 가격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비축·할인·점검 등 현장 중심의 선제적 대응을 강화해 생활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