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2025-10-30 13:00:02 게재

반세기 인적교류가 보여준 중일관계의 미래

중일관계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투자규모나 무역통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숫자들 뒤에는 사람의 이동이 있었다. 1972년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을 오간 이들의 발자취야말로 진짜 이야기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실크로드 붐’이 불었다. 일본방송협회(NHK)의 특집 방송을 본 많은 일본인이 둔황(敦煌)과 시안(西安)으로 향했다. 이들에게 그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잊고 지냈던 대륙과의 재회였고 중국 문명에 대한 오래된 호기심의 분출이었다.

반대 방향의 흐름도 시작됐다. 1980년대 후반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수많은 중국 청년이 일본으로 건너왔다. 유학생으로 연수생으로 그들은 일본의 경제 발전을 배우러 왔다. 당시 일본 사회는 이들을 ‘미래의 가교’로 여기며 비교적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21세기로 접어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5년 전후 ‘폭풍 구매’라는 말이 회자됐다. 중국 부유층의 소비가 일본 경제를 떠받쳤지만 진짜 문화 교류는 뒷전이었다. 일본에서 중국으로의 이동은 출장 중심이었고 청년들의 자발적 교류는 거의 없었다. 한류 드라마처럼 대중문화로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치적 긴장 속 민간교류가 열쇠다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룬르(潤日)’ 현상이 화제다. 치안과 교육을 생각해 일본 이주를 택하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 이들은 여행객이 아니라 생활인이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 통계를 보면 2024년 말 기준 장기체류 중국인이 87만3286명에 달한다. 재류 외국인의 23.2%로 이미 최대 커뮤니티를 이룬 셈이다.

하지만 이 흐름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SNS에서는 ‘중국인의 토지 매집’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이 돈다. 실제보다 과장된 정보가 배타적 감정을 키운다. ‘중국인이 늘면 위협 받는다’는 단순한 등식이 퍼지고 있다.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졌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감이 급속히 퍼졌다. 한일 양국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중국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의 진폭이 크다는 점 말이다.

유럽은 달랐다. 에라스무스(Erasmus) 같은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을 일찍부터 제도화했다. 경제통합과 함께 사람의 이해도 함께 키웠다. 이에 비하면 중일 간 교육·문화교류는 빈약하다. 관광이나 비즈니스가 대부분이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구조적 교류는 부족하다. 이것이 오해와 마찰을 키우는 배경이다.

공존의 토대없이 교류만 늘린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지역사회에서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노동자가 고립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경제적 이득만 쫓는 교류는 오래가지 못한다. 문화와 교육,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여 사람을 이해하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10월 21일 출범한 다카이치정권은 안보와 경제안보를 우선시한다. 대만해협의 긴장과 미중대립 속에서 중일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비자발급 강화, 유학제도 재검토, 외국인 노동자 쿼터 조정 등이 거론된다. 정치적 긴장이 사람의 이동에 영향을 미칠 조짐이다.

그러나 정치의 경직이 민간 교류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부 간 관계가 얼어붙을수록 민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기업 현장에서 다국적 팀이 일하고 대학에서 공동연구가 계속되며 지역에서 외국인과 주민이 손잡는 일들은 여전히 일어난다. 이런 풀뿌리 축적이 또 다른 중일관계를 만들어간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적교류의 양적팽창에서 질적도약으로의 전환이다. 단기 경제효과에 매달리지 말고 교육과 연구, 지역 생활 속에서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서로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대화를 나누는 장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한국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과제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이웃과의 관계를 사람을 통한 이해로 지탱해야 한다.

경제·관광교류에서 공존의 제도화 단계로

반세기 중일교류를 돌아보면 경제와 관광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성숙사회로 접어든 일본이 지금 풀어야 할 숙제는 다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그것을 제도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세계화 속에서 사람의 이동은 멈출 수 없다. 정치와 경제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인간적 이해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안정적인 중일관계와 동아시아 공존의 초석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중국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며 어떻게 마주 설 것인가. 불신을 넘어 아시아의 이웃으로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공동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주영호 일본국립후쿠시마대 교수, 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