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국부론’ 생일상에 재 뿌린 트럼프

2026-03-09 13:00:00 게재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인류 역사를 바꾼 역작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부론’은 최초의 경제학 교과서이자 자본주의의 이론적 효시다. 이 위대한 책이 오늘(3월 9일) 250주년 생일을 맞았다. ‘국부론’에서 너무나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은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금과옥조 같은 이 말이 1000쪽 넘는 분량에서 딱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 게 신기하다.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시장이론의 핵심인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은 자본주의를 자유무역주의로 탈바꿈시키는 데 이바지해 왔다.

두 번째로 유명한 부분은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 경제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점을 흥미롭게 표현한 대목이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이나 양조장의 주인, 제빵업자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는 이기심의 효능을 역설했으나 앞서 출간한 ‘도덕감정론’에서는 사람의 본성은 이타적인 것이며, 이타심이 없는 이기심의 위험성을 역설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더라도, 본성에는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복을 자신의 필요로 만드는 원리가 있다.

‘국부론’ 출간 이후 중상주의 퇴조와 자유무역 증진

‘국부론’은 국가의 번영을 촉진하는 두 가지 원리로 분업과 자본축적을 든다. 국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철학이다. 스미스는 생산의 기초를 분업에 둔다. 분업에 따르는 기계를 채용(債用)하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필요하고, 자유경쟁에 의해 자본축적을 꾀하는 것이 국부 증진의 바른길이라고 여겼다. 쉽게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이 더 큰 부를 만든다고 간추릴 수 있겠다.

‘국부론’은 신랄한 중상주의 비판서나 다름없다.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를 금과 은의 축적으로 보고 무역수지 흑자와 국가의 경제 개입으로 국력을 강화하려 했던 경제사상이다.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이 중상주의 체제의 핵심수단 중 하나다.

중상주의 정책의 가장 큰 해악은 각 나라 국민 간의 연결고리가 되는 무역을 분쟁의 원인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다. ‘국부론’ 출간 이후 지구촌은 서서히 중상주의 퇴조와 자유무역 증진의 궤도를 그려왔다. 오랫동안 국가 간 분업은 심화했고, 이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대부분의 성장 기반이 됐다.

이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 장애물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중상주의 깃발을 새삼스레 꺼내 들고나왔다. 경쟁도 있었지만 비교적 평화롭던 지구 마을 장터에 관세폭탄을 들고 골목대장처럼 등장했다. 중상주의가 도입된 유럽 절대군주시대처럼 트럼프 역시 새로운 중상주의 시대의 절대왕 같은 험악한 얼굴로 약자를 서슴없이 위협한다. 관세는 19세기 중상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수법의 하나다. 당시엔 수입품에 관세를 매겨 국내 산업을 무조건 장려해야 국부가 축적된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유럽은 오랜 논쟁 끝에 중상주의의 곡물법을 폐기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뒤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트럼프는 시장에 대한 개입을 서슴지 않고 세계의 자유무역 질서를 파괴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도 물러서지 않고 관세카드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무효가 된 상호관세를 대체할 검증된 대안으로서의 관세수단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관세는 이전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한 가진 트럼프는 한 손에는 무역법 301조, 다른 손에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관세폭탄 카드를 흔들어 보였다. 트럼프는 “지난 1년간 상호관세를 통해 미국을 ‘황금시대’로 만들었다”라고 자화자찬했다.

관세 휘두르는 트럼프의 중상주의 자유무역 질서 파괴

트럼프의 중상주의는 두 세기 전 중상주의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국의 일방적 관세폭탄에 대해 어떤 나라도 그에 상응하는 관세로 보복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쏘아 올린 중상주의는 국가 간 새로운 갈등을 끝없이 유발한다. 국제관계는 어느 때보다 상호 간 민감성이 높아졌고 취약성도 깊어졌다.

‘국부론’의 이백쉰번째 생일상에 케이크를 올리기는커녕 재를 뿌린 트럼프는 이 책을 읽기나 했을까 싶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이렇게 일갈했다.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정책과 인간의 탐욕을 탓하라.”

김학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