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이제 K-특허 전략이 필요한 때다
세계 기술경쟁의 전장은 특허다. 그러나 경쟁의 핵심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은 특허를 보유하느냐가 아니라 그 특허를 얼마나 비즈니스와 산업경쟁력으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특허는 단순한 기술보호 장치가 아니라 기업의 핵심 무형자산(intangible asset)이며, 이 무형자산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때 비로소 캐시카우(cash cow)가 된다. 결국 미래 산업 경쟁력은 R&D-특허-무형자산-수익모델로 이어지는 구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중국이다. 최근 글로벌 특허 경쟁에서 중국은 압도적인 양적우위를 보인다. 2024년 기준 중국의 특허출원은 약 180만건으로 전세계 출원의 49.1%를 차지한다. 이는 미국의 약 3배 규모다. 또한 2025년 인공지능 지수 보고서(AI Index Report)에 따르면 중국은 2010년 이후 전세계 AI 특허의 약 70%를 누적하며 단기간에 기술경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반면 다수의 특허가 중국 국내에 한정되고 비교적 낮은 국제 특허 등록률은 양적 우위의 실질적 영향력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보호 중심에서 수익 중심으로 전략전환 필요
그럼에도 중국 전략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분명하다. 특허를 빠르게 산업화하고 플랫폼을 통해 확산시키는 구조다. 중국 기업들은 특허기술을 기반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빠르게 시장에 적용하고, 알리바바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산시키며 사실상의 표준으로 발전시킨다. 특허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산업구조를 설계하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다.
특허의 보호기간은 20년에 불과하지만 기술이 플랫폼과 산업표준으로 자리 잡게되면 그 영향력은 훨씬 오래 지속된다. 여기에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이 결합되면서 특허 기반 기술은 빠르게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반면 한국은 전혀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내수시장 속에서 기술경쟁을 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특허를 많이 보유하는 전략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은 특허를 거래하고 공유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개방적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 한국 특허전략에는 세 가지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보호 중심에서 수익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특허를 단순한 기술보호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모델과 연결되는 핵심 무형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라이선싱, 기술 거래, 지식재산(IP) 금융 등 다양한 방식으로 특허가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독점 중심에서 거래와 공유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특허는 독점권이지만 현대 산업에서는 협력과 거래가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낸다. 기술 라이선싱, 크로스 라이선스,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특허를 산업 생태계 속에서 활용해야 한다. 독점적 권리로 묶여 있는 특허보다 산업 전체에서 활용되는 특허가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든다.
셋째, 기술 중심에서 플랫폼과 표준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핵심기술이 산업 플랫폼과 표준 속에 자리잡을 때 그 영향력은 훨씬 커진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표준특허 전략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특허경쟁의 미래는 플랫폼과 표준 경쟁이다.
단순한 법적 권리 아닌 경영전략의 핵심자산
이제 한국의 특허전략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형 IP 전략 국가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AI와 첨단 기술 분야에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특허의 사업화와 전략적 활용을 촉진하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중국이 ISO56005 지식재산 혁신관리 인증을 중심으로 기업의 IP 경영 체계를 표준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이 특허를 단순한 법적권리가 아니라 경영전략의 핵심자산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국가 전략인 것이다.
한국 역시 기업들이 지식재산을 전략자산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IP경영 인증 제도, 무형자산 공시 제도, 지식재산 기반 기업 평가 시스템 등을 통해 기업의 특허와 기술자산을 경영전략의 중심에 두도록 해야 한다. 특허를 많이 보유한 기업이 아니라 특허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혁신 생태계는 작동한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기술력과 높은 수준의 특허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특허의 양적 경쟁을 넘어 특허를 통해 산업생태계를 설계하고 수익구조를 창출하는 전략적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