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상식은 원래 의심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많은 생각들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과거 사람들은 왕이 다스리는 것이 당연한 질서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상식을 의심했다. ‘왜 왕이 나라의 주인이어야 하는가’ ‘왜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이어야 하는가’ 그 질문 속에서 국민주권이라는 새로운 상식이 태어났다.
우리는 흔히 ‘주권자’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선거를 하면 주권을 행사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 선거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주권을 행사한 것일까. 선거는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선거는 주권 그 자체가 아니다. 선거는 주권을 실행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의 절차일 뿐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세탁소에 옷을 맡긴다. 그러나 모든 옷을 맡기지는 않는다. 급하면 내가 빨고 다림질도 한다.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러나 모든 식사를 식당에 맡기지는 않는다. 시간이 있으면 내가 직접 요리한다. 우리는 일을 맡긴다. 그러나 전부 맡기지는 않는다.
'선거' 주권 실행방식 중 하나의 절차일 뿐
그런데 정치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선거에서 맡기고 그 다음에는 관객이 된다. 구경하고 평론하고 욕하고 박수친다. 그리고 그것을 ‘참여’라고 부른다.
하지만 주권까지 맡긴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겼다고 해서 그 일이 전부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운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부를 맡긴다. 그리고 대부분은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선거는 그 일부를 맡기는 절차다.
우리는 대표자를 선출해 국회와 지방의회로 보낸다. 그곳에서 예산이 정해지고 규칙이 만들어지고 공동체의 운영 방향이 결정된다. 그러나 그것이 주권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권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주권은 어디에서 작동해야 하는가. 그 공간이 바로 ‘자치’다. ‘자치’는 행정의 하부 구조가 아니다. 자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규칙을 스스로 제정하는 권한이다. 규칙을 정하는 권한이 없다면 그 공동체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지방자치’는 행정 제도가 아니라 주권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다.
정부의 기능도 여기에서 분명해진다. 첫째는 ‘민주성’이다. 주권자가 더 많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둘째는 ‘공공성’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공공재를 생산해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는 일이다. 셋째는 ‘성장성’이다. 공동체가 외부 세계와 경쟁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 세가지 가운데 가장 기본은 민주성이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도 결국 주권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주권자가 실제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에서는 참여가 늘어도 민주주의는 강해지지 않는다.
‘자치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이 정부는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고 말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의 역할도 분명하다. 주권을 대신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 또 다른 이름인 자치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 민주성은 구경과 박수에서 생기지 않는다. 민주성은 주권이 실제로 강해질 때 생긴다. 다시 묻는다. 우리는 ‘주권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 ‘주권’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