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AI 시대 대학 졸업자와 신입생들
대학의 봄은 졸업식·입학식과 함께 온다. 2월 하순 졸업 시즌에 이어 3월 초 입학식, 1학기 개강이 이뤄지며 캠퍼스는 기대와 설렘이 충만해진다. 그런데 요즘 졸업식과 입학식은 예전 같지 않다. 졸업식은 냉랭한 취업전선 탓에, 입학식은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졸업 시즌에 임박해 발표된 1월 고용통계는 청년고용 빙하기를 예고했다.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3.6%. 2021년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전 연령대 평균 고용률(61.0%)과 크게 차이 난다. 일도, 구직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이 46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5000명 늘었다.
청년층 고용시장 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경기 불확실성과 비용부담에 경력직·수시채용으로 전환하며 신입 공채를 줄인다. 그 결과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을 얻는 데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도 많아진다.
게다가 인공지능(AI) 활용이 확산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로 청년층이 선호해온 회계·법률·엔지니어·연구원 등 전문직마저 불안해졌다. AI의 일자리 위협은 통계로 입증된다. 지난해 12월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취업자가 전년동월 대비 5만6000명 줄었다. 올해 1월 감소폭은 두 배에 가까운 9만8000명이었다. 지난해 공인회계사 합격자 1200명 중 상당수가 실무 수습처를 구하지 못했다.
AI 확산하며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2년 7월~2025년 7월, 3년 새 청년 일자리 21만1000개가 줄었다. 그 중 20만8000개가 AI 고(高)노출 업종에서 사라졌다. 특히 2022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출판업, 전문서비스업, 정보서비스업에서 두드러졌다. AI 확산 초기에 청년고용 충격이 큰 것은 청년층이 숙련도가 떨어지고 정형화된, 교과서적인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한은이 지난해 6월 취업자 5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성형AI 활용 경험 비중은 63.5%였다. 업무 용도 활용률은 51.8%로 미국(26.5%)의 두 배다. 인터넷 도입 당시보다 8배 빠른 확산 속도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0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 같냐’고 묻자 48.2%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사회 진입을 앞둔 20대의 58.1%가 반응할 정도로 불안감이 컸다.
AI발 일자리 공포는 지난달 미국 월가를 뒤흔들었다. 고성능 AI 도구가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을 대규모로 실직시키고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못 갚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를 압도하는 대혼란이 2028년 벌어질 수 있다는 신생 리서치회사 시트리니의 가상 시나리오가 공개됐다. 이에 보고서에 언급된 기업들 주가가 줄하락했다.
챗GPT가 등장한 지 3년여, 이 세상 많은 분야가 ‘AI 이전’과 ‘AI 이후’로 나뉜다. 올해 2월 대학 졸업자들은 챗GPT보다 8개월 앞서 입학한 젊은이들이다. 챗GPT가 시동을 건 생성형AI 개발 경쟁이 3년여 만에 에이젠틱AI, 피지컬AI를 거쳐 범용AI(AGI), 초지능AI(ASI) 개념까지 발전하는 사이 우리나라 대학은 뭐했는지 자문할 때다.
대학의 ‘마지막 수업’은 졸업식 축사다. AI가 급속 확산하는 가운데 청년고용 부진이 장기화하자 대학들은 기업인들을 초청해 졸업생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서울대 졸업식에서 소버린 AI 전략을 주도하는 네이버 최수연 대표가 축사를 했다.
최 대표는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 마주할 세상은 제가 졸업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고 거세게 변화하고 있다. 유망한 어떤 직업들은 수년 내 곧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며 “불확실성의 시대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엉덩이의 힘, 끝까지 집요하게 파는 성실함”이라고 강조했다.
나날이 진화하는 AI에 지레 겁먹어선 곤란하다.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를 더 성장시킬지, AI에 일자리를 빼앗겨 실업자를 양산하고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를 망가뜨릴지는 세계 각국이 하기 나름이다.
‘AI 이전’ ‘AI 이후’로 나뉘는 세상
AI는 산업을 재편하는 플랫폼이자 새로운 솔루션 제공자다. 인간과 AI가 ‘쓸모’ 경쟁하는 시대에 걸맞은 교육·복지·조세·산업 정책에 대한 재설계가 요구된다. 청년들이 AI를 활용해 새로운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도록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하자.
창업은 AI가 자동화하기 어려운 창의적 주제 제기, 아이디어 구현, 시장 탐색 능력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AI 활용 역량 강화 교육, 공공 데이터 접근성 제고, 포용적 창업 생태계 조성 등을 통해 청년들이 AI와 윈윈하는 신산업을 모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자.
AI는 국제유가와 가스·석탄 가격을 끌어올리며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우려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전쟁에도 활용됐다. 계절은 봄이지만 경제와 청년고용의 봄은 거저 오지 않는다.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