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개혁, 속도보다 방법과 수순이 중요하다
수개월을 끌어오던 한미 관세 및 안보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과도한 요구를 들고 나와 거센 압박을 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이재명 대통령과 우리 협상팀이 끈기 있게 잘 대응해 얻어낸 결과다.
우리 정부 자체평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외신들이 관세협상에서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냈고 주요 안보현안인 핵잠수함 건조와 원자력 협력에 한미협력의 물꼬를 텄다며 이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게 돋보인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도 반등의 계기가 마련되고, 국정동력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이 같은 효과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동안에도 이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통해 얻었던 외교적 성과가 국내 정치에서의 실점으로 빛이 바래고 국정지지도 상승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대표체제가 주도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 드라이브를 둘러싸고 마찰과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는 게 문제다. 검찰개혁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중대범죄수사청 신설로 가닥이 잡혔으나 제대로 개혁을 완수하기까지는 길이 아직 멀다.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은 한창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개혁대상이 되는 사법부와 언론계의 반발도 거세다.
외교적 성과도 국내 정치 실점으로 빛바래
정의와 공정성 실현을 담보하지 못해 국민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있는 사법부 개혁은 당연하다. 또 가짜뉴스로 혐오와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무책임한 보도 행태도 언론자유의 이름으로 무한정 용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과 구조를 바꾸는 사회적 개혁이 기존체제와 기득권의 큰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개혁을 추진하면서 방향뿐만 아니라 속도와 방법 수순이 중요한 이유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태가 문제라고 해서 지금처럼 그의 사퇴를 정면으로 압박하면 사법부의 저항만 키울 뿐이다.
그 와중에 사법부 내부에서 일고 있던 개혁의 목소리는 낮아지고 일반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겠다는 언론개혁도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엊그제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발대식’을 갖고 내년 6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검찰·사법·언론의 3대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도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목표로 한 전략이다.12.3 비상계엄 및 내란심판 분위기 속에 3대 개혁만 완수하면 압승을 거둘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흐름은 좀 다르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당 후보 다수 당선’을 지지하는 응답은 39%, ‘야당 후보 다수당선’을 지지하는 응답은 36%로 엇비슷하게 나타났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 이렇다면 민주당은 크게 긴장해야 마땅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와 국민의힘 지지도가 점점 좁혀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여당 지금의 상황 냉정하게 돌아봐야
더구나 민주당 안팎에서 불리한 악재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최민희 국회과방위원장의 처신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최 위원장은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 의사당 동산에서 딸의 결혼식을 치른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는데, 피감기관과 대기업 등에서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르는 축의금을 받았다가 돌려줘 물의를 빚고 있다. 자신에 대한 보도 방송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국감도중 해당 방송의 본부장을 퇴장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내란의 굴레를 벗지 못해 곤경에 처해있는 국민의힘 측에서는 민주당 강경파들을 겨냥해 ‘의인들’이라며 반색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민심이 하루 아침에 변한다는 것을 여러번 봐 왔다. 한미간 관세 및 안보협상의 극적 타결로 모처럼 미소를 되찾은 여당은 작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