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과학대중화 시대와 과학자의 역할

2025-11-04 13:00:03 게재

한국 물리학회의 ‘물리 대중화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2020년쯤의 일이다. 물리학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전달할 방법을 찾는 목적의 이 위원회에는 학자, 방송국 관계자, 작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위원으로 있었다. 방송국 관계자들이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스타 과학자 위주의 방송 편성 방식을 선호하며, 내용도 좋지만 일단 장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5년 사이에 과학 대중화는 한국 물리학회의 손을 떠나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100만 구독자를 둔 과학 유튜버도 탄생했다. 작가들이 유명한 유튜브 방송에서 자기 책 소개 기회를 갖길 고대하듯, 과학자들도 100만 유튜버 방송의 부름을 받아 자기 연구를 홍보할 기회를 소망하는 세상이 됐다.

연구 실력과 더불어 방송에 어울리는 외모 순발력 언변까지 갖춘 과학자라면 단숨에 스타가 되어 이후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강연 섭외를 받게 될 것이다. 100만 유튜버가 과학자들에겐 새로운 등용문이 되었다.

대중에게 교양을 전달하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는 1980년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제작돼 7억5000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주와 천문학과 관련한 만만치 않은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이처럼 성공을 거둔 이유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추었다는 데 있었다. 지난해 영화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도 “어릴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며 우주를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극적일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학을 오락으로 승격시킨 K-유튜버들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과학 교양프로그램이라도 성공을 위해서는 말초적 자극을 주는 오락적 요소가 필요하다. 재미와 가장 멀리 떨어진 듯 보이는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비결은 문제 풀이가 주는 말초적 쾌감 때문이다. 그 결과물은 논문이란 재미없는 옷을 입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은 연구자에게는 오락에 가깝다.

플라톤의 고전 ‘심포지움’은 비극작가 아가톤의 집에 모인 소크라테스, 파이드로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여러 인물이 술 한잔 하면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 명씩 자신의 견해를 설파한 연설 요약본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인간이 원래 완전한 하나였으나 신들에게 대항하다가 제우스의 벌로 둘로 나뉘어졌고, 각자 나뉜 반쪽을 찾아 다시 원래의 완전함을 회복하려는 욕구가 사랑이라고 주장하며 언급한 ‘소울메이트 이야기’는 250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살아남아 여전히 감동을 준다.

대중과 멀리 떨어져 있던 과학을 교양을 겸한 오락의 한 분야로 승격시킨 것은 K-과학 유튜버들의 공적이다. 영어권 1000만 유튜버들이 생산하는, 엄숙하고 지상파의 과학 다큐를 닮은 방송과 달리 K-과학 유튜버들이 생산한 과학 유튜브 내용은 흥이 넘치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최적화되었다. 예능 방송처럼 과학과 수다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진행 기술은 가히 독보적이다.

필자도 물리 연구의 즐거움과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물질의 물리학’이란 책을 쓰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글도 쓰고 강연도 다녔다. 커다란 참치 한 마리를 해체해 먹기 좋은 초밥으로 만들어 손님에게 내어주듯 첨단 물리지식을 잘게 썰어 먹기 좋게 다듬어 전달하는 작업에서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100만 유튜버가 등장한 요즘에는 글로 대중과 소통한다는 게 쿠팡 등장으로 하나씩 사라지는 소매점의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과학 대중화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과학적 담론에 익숙한 대중이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물론 현실 세계에는 과학의 논리 이상으로 중요한 자본(돈)의 논리가 있다.

조회수를 높여줄 스타 과학자에게 섭외가 몰리는 것은 자본의 논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미 대중은 100만 유튜버들의 방송을 통해 과학과 과학자를 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 소통은 새로운 장르이자 권력이 됐다. 방송의 섭외와 형식을 결정하는 권한은 제작자 유튜버에게 있다.

과학자들의 일차적 책임은 질 높은 탐구

더 이상 물리학회의 대중화 작업은 필요 없어 보인다.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급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연구자가 직접 책방 도서관 학교에서 소규모의 대중과 상호작용하며 과학을 소통할 기회가 많아졌다. 우리는 어느새 과학 소통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은 과학 소통 풍요의 시대에도 과학자들의 일차적 책임은 여전히 질 높은 과학적 탐구의 결과물을 논문으로, 글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연구 결과물을 대중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춰 재가공해서 정확히 전달하는 작업은 이제 저변이 넓어진 K-과학 유튜버 같은 과학 소통 전문가들의 몫이 되었다. 정확한 과학 지식의 전달과 수준높은 과학적 담론의 보장은 그들이 쓰게 된 왕관의 무게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균관대학교 교수

물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