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경찰의 산업기술 유출 수사권 확대
현대 산업의 경쟁력은 곧 기술력이다. 기술은 공개를 전제로 한 특허나 디자인 등록을 통해 또는 철저한 비밀관리를 전제로 한 영업비밀 형태로 보호받는다. 그러나 정당한 거래 범위를 벗어난 산업기술 유출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업 피해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경제안보 범죄로 인식되어야 한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최근 5년간 해외 기술유출 시도 적발 건수는 93건, 피해 추정액은 25조원에 달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도 연간 피해액이 56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비 60%를 초과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피해규모가 막대한 이유 중 하나는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비효율적 수사체계에 있다. 현재 산업기술 유출 수사는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등 여러 기관으로 분산되어 있다. 실질적 수사권이 없는 국정원이 주도적으로 활동한 뒤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는 구조다. 이러한 체계는 사건 처리의 신속성과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바로 지식재산처 특별사법경찰(기술경찰)의 역할 확대다.
기술침해 사건의 핵심은 고도의 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유사성 판단과 침해여부 분석능력에 있다. 2019년 출범한 기술경찰은 이미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검찰에 접수된 기술침해 사건 중 약 20.1%를 담당하고 있다. 1인당 사건처리는 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의 6배에 달한다. 기술경찰이 수사한 사건의 기소율은 약 16%로 검찰의 기술침해 사건 평균 기소율(5.4%)보다 약 3배 높다. 이는 기술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수사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현행 법 체계상 기술경찰은 특허·디자인·영업비밀 침해사건만 수사할 수 있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사건은 수사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산업기술 유출과 영업비밀 유출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2015년부터 5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의 54%에서 두 혐의가 동시에 인정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보호대상이 ‘국가핵심기술’이냐 ‘일반 영업비밀’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침해의 행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기술 전문성을 갖춘 특허청 기술경찰에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을 포함한 전반적인 기술유출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는 분산된 수사체계를 일원화하고 기술분야 전문성을 단일 기관에 집중해 수사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지난 10월 1일 새롭게 출범한 지식재산처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도 기술경찰의 기능강화는 필수적이다. 지식재산 보호와 산업기술 보안은 하나의 축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유출 문제는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분쟁이 아니다. 국가의 기술주권과 미래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중대한 과제다. 기술과 지식재산권에 대한 독보적인 전문성을 지닌 기술경찰 조직을 강화해 산업기술 유출 수사를 전담하는 핵심기관으로 육성해야 한다. 기술경찰이 대한민국의 기술보호를 선도하는 전문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적 결단과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정인식 특허법인 성암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