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증시 급등락과 한국의 사회 경제적 구조전환
코스피지수의 급락을 두고 많은 분석가들이 ‘인공지능(AI) 거품론’의 확산을 지목했다. 전날 미국의 AI 빅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가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8%가까이 폭락한 점이 하나의 트리거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증시의 최근 급등이 AI 관련 기술주에 과다하게 치우쳐 미국 관련주식의 급락이 아시아 증시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납득할 만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사후적인 설명일 뿐이다. 합리적인 사전적 설명이라면 ‘올 것이 왔다’ 정도일 것이다.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쌓음으로써 행동으로 경고를 날려왔다. 물론 더 큰 것을 기대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 정도의 사소한 변동으로 움직일 리는 없어 보인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10월 중순 이후 코스피지수가 600p 정도 올라갈 때부터 낙관론과 비관론이 제기됐다. 낙관론은 증시부양정책의 지속가능성과 세계적 과잉유동성에 기인한 인플레이션 기대의 상승을 근거로 한다. 거기에 외국투자자가 집중적으로 사들였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폭발적인 실적 개선과 기대실적을 덧붙인다.
비관론은 인구구조 변화와 함께 지난 20여년간 지속되고 있는 국내 생산성의 하락으로 인한 국내 투자수익률의 하락이 4000을 넘어선 코스피지수를 지속적으로 지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기업과 개인이 해외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물경제는 경기침체에 빠진 채 주가지수만 고공행진을 지속할 수 없다는 논리이므로 코스피 3000선으로의 되돌림을 전망하고 있다.
코스피 급락에 비관론과 낙관론 교차
이번의 짧은 급락으로 어느 쪽이 맞고 그르고를 가릴 수는 없다. 되짚어 보면 과거 강세장에서 일시적으로 10% 내외를 넘나드는 하락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1986~1988년의 3저호황을 배경으로 1989년까지 이어진 강세장은 코스피지수를 2~2.5배 정도 끌어올렸는데 그 기간 매년 1~2회의 급락이 나타났다. 1998~1999년 기간에도 중간에 20%이상의 급락이 있었고 이후 코스피는 2배 증가했다.
2003년 이후 2004년 1분기까지 80% 상승했던 코스피지수는 2분기 들어 20% 내외 급락했지만 강세장은 다시 지속되었다. 2009~2011년에도 그랬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사태 이후의 급락과 급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증권시장의 변동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경제적 구조변화와의 맞물림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다. 증권시장의 순환은 반복되어 왔는데 한국의 사회·경제적 구조변화와 관련해서 의미있다고 보는 것은 두번이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3저호황기이고, 다른 하나는 2000년대 초반의 정보통신(IT)붐이다. 전자는 1973년 ‘중화학공업화선언’에서 기점을 잡을 수 있는 산업화가 마무리되는 새로운 구조전환의 기점이다.
3저호황 이전은 산업화가 시대과제였고, 이후는 민주화가 시대과제가 되는 전환이다. 그 이후 10여년간 산업화는 한국의 시대과제에서 뒷전으로 물러난다. 1973년 당시 정부는 산업화의 비전으로 한강에 떠 있는 유람선, 강변의 4차선 도로와 그 도로를 채운 형형색색의 자동차, 그 뒤 병풍처럼 세워진 아파트 집합건물군이었다.
당시 정부홍보용 화보물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그림이다. 1987년 주식회사 ‘세모’의 한강유람선사업이 시작되었고, 같은 해 김포공항에서 잠실운동장까지 왕복 8차로 ‘올림픽대로’가 개통돼 ‘마이카’시대가 열였다. 1988년 주택 200만호 건설선언이 있었다. ‘중화학공업화선언’의 비전은 현실이 되었고 비전은 현실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비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민주화의 시대에 한국은 진영으로 갈라져서 합의된 새로운 비전의 창출에 실패한다. 결국 1996년 12월 노동법파동을 거쳐 1997년 12월 ‘IMF외환위기’로 들어섰고 증시는 대폭락했다.
2000년대 초의 IT붐과 버블, 그리고 증시붕괴는 1998년 ‘1가구 1PC운동’으로 촉발된 한국경제 IT화의 기점이다. 무수한 기업의 부도와 무수한 노동자와 가정의 희생을 딛고 잿더미속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싹을 텄다.
국민 희생 최소화하는 정치와 정책 기대
‘AI와 데이터 센터’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와 산업구조의 ‘AI 화’가 세계 주요국의 화두가 된 지도 한참이다. 이제 중국과의 경쟁속에서 기존 체제의 한계와 위기에 부딪친 한국은 좋든 싫든 그 길에 들어섰고, 어쩌면 그 기점이 AI산업에 의존하는 이번 증시 급등일지도 모른다.
젠슨 황의 GPU 26만장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보면서 2000년대 초 경제의 IT 전환과 맞물린 IT버블이라는 기시감을 얻는 것은 무리일까. 가급적 국민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정치와 정책을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