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일본 디지털 무역적자, 콘텐츠 수출에서 활로 찾기
일본에서는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는 한편 이를 위한 각종 디지털서비스 구입이 늘어 디지털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무역적자는 경영 및 컨설팅 서비스, 컴퓨터서비스, 저작권 등 사용료 서비스, 정보서비스, 통신서비스 등의 5개로 분류된다. 일본의 디지털서비스 시장에서는 고수익 분야인 앱, 미들웨어, 운영체제(OS), 계산 자원 인프라, 디지털 광고 등에서 외국 기업이 높은 점유율을 점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디지털 무역적자 급속 팽창 우려
경제산업성은 디지털 경제리포트(2025.4.30.)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디지털 적자 규모가 2025년 6조5000억엔에서 2035년 18조엔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으며, 최악의 경우 28조엔까지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조강국이지만 디지털 무역적자가 확대 경향을 보이는 한국이나 일본으로서는 중장기적인 대응책이 중요한 시점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했다. 첫째, 애플리케이션 사업, 미들웨어와 OS 사업은 고수익·고성장 사업이며, 일본으로서도 이러한 사업을 기점으로 해외로부터 수익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OS나 소비자용 플랫폼 기반을 세계적으로 구축해 디지털 수출을 확대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으나 각종 제조업의 플랫폼이나 스마트공장 등의 기술 규격 선점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 사업의 경우 성장성이 떨어지고 있으나 AI혁명과 외국계 기업에 의한 서비스 혁신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변화할 수 있다. 일본기업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비즈니스 모델의 부가가치 향상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한편 성장률이 높은 컴퓨팅 자원 인프라 사업 분야에서도 일본기업이 단기적으로 빅테크 등을 대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빅테크에게 요금을 지불해 컴퓨팅 자원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애플리케이션·미들웨어 수출을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방법은 가능하다.
이와 함께 차세대 기술에 투자하는 전략이 제안되고 있다. 즉 양자기술에 의한 컴퓨팅 아키텍처의 대전환을 주도하기 위해 일본정부와 민간의 장기적인 투자 역량을 확보하는 방안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산업성은 일본이 강점을 가진 애니메이션 등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를 계속 강화하면서 수출 수익을 확보하는 정책도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 콘텐츠 시장의 잠재력은 최근 재평가 되고 있다. 닛케이는 지난 6월 30일자 보도에서 소니그룹 닌텐도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주요 9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57조2000억엔에 달해 자동차 주요 9개사(56조8000억엔)를 처음으로 추월했다고 밝혔다.
일본 콘텐츠 산업의 수출액은 과거 10년 동안 3배로 늘어나 2023년에는 5조8000억엔을 기록해서 철강 화학 반도체산업을 능가해 자동차에 이어 제2의 수출 분야로 성장했다. 일본 콘텐츠 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안정성도 높은데다 콘텐츠의 디지털 유통이 글로벌하게 확대 추세에 있고 이 분야는 세계무역기구(WTO) 합의에 따라 관세대상이 아니라는 장점도 있다.
경제와 산업의 디지털화 추세에서 일본 콘텐츠 산업이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닌텐도의 경우 디지털 매출 비중이 2019년의 25%에서 2025년 53.5%로 급상승했으며, 신흥국의 소득 증가와 디지털 콘텐츠 시청 문화 확산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안정성과 성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콘텐츠의 해외매출 확대 추진
또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중에는 해적판 등의 불법유통 물량도 상당한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산업성은 콘텐츠의 해외 판매액을 2033년까지 20조엔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구체적인 지원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본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애니메이션 등과 함께 이와 관련된 굿즈 판매, 디지털 공간에서의 2, 3차 활용 비즈니스 등으로 확대되는 등 연쇄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콘텐츠 기업의 지식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 비즈니스의 수익성이 호조를 보이면서, 캐릭터 상품화와 콘텐츠 라이선스 사업도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헬로키티로 유명한 일본 산리오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25년 3월 기준으로 48.6%로 아주 높은 수준이다. 소니도 일본 콘텐츠와 함께 비틀즈나 비욘세 등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포함한 각종 IP를 축적 중이며, 최근 세계적인 히트작이 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소니가 넷플릭스와 함께 공동 제작했다.
정부는 일본 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과거에는 저위험·소규모의 라이선스 아웃 방식이 주류였으며, 해외 파트너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저작권을 넘기고 수익을 일부 공유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일본기업이 직접 해외에 거점을 확충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영상 배급, 관련 상품 판매, 라이브 이벤트 등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게 해외에서 실질적인 비즈니스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라이브 이벤트, 상품 판매 등과 연계된 새로운 가치사슬 구축과 인프라 정비가 요구된다. 기존의 지원책과 지원 체계도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각 부처나 무역진흥기구(JETRO) 등의 지원 기능을 활용해 일본 콘텐츠의 해외 팬덤 형성, 유통망 강화, 일본 콘텐츠의 이미지 제고 등에 주력할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또한 경제산업성은 크리에이터 부족과 제작 역량의 과부하에 대응한 인력 양성 기반 구축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지방에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각종 스튜디오 등의 설비를 확충하면서 지방의 인력 활용 체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지방의 콘텐츠 관광자원도 확충해 외국인 관광객이 도쿄 오사카 등에 집중된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지방으로 관광객을 분산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콘텐츠 산업을 뒷받침하는 디지털 기술력 강화도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특히 영화 등 각종 영상 분야에서는 실제 촬영이 어려운 장면을 컴퓨터그래픽(CG)이나 합성 기술로 구현하는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s)와 가상프로덕션(VP, Virtual Production)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VP는 실시간 렌더링(Rendering, 3D 기반 이미지 생성) 기술과 LED월(대형 영상화면) 등을 활용해 가상배경을 구현하며 실제 촬영과 디지털 환경을 융합하는 제작 방식이다.
정부는 콘텐츠 제작의 자동화 및 효율화를 위한 AI 기술 개발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일본 유수의 AI 스타트업 기업인 프리퍼드넥트웍스(PFN)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신경망 기술을 활용해 2D 이미지로부터 3D 공간을 학습하고 재구성하는 기술 등의 개발에 성공했으며, 빛의 반사와 시점 변화에 따른 장면의 모습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등 사실적인 3D 복원과 시각효과 구현해냈다. 영상 제작, 증강현실과 가상현실(AR/VR), 디지털 트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범정부 차원의 수출 촉진 체제 강화 필요
콘텐츠의 해외수출 전략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실적을 거두어 왔다. 하지만 일본처럼 디지털 무역적자 문제가 있다는 것도 고려하면 전체적인 디지털 경쟁력의 강화와 함께 콘텐츠산업의 수출확대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대학 연계 등 종합적 인재 육성책, 굿즈 판매 복합 비즈니스, VFX VP 기술을 적용한 스튜디오 등의 인프라 확충, 콘텐츠 비즈니스와 지방 경제 활성화 연계, 콘텐츠 전문 AI 기술력의 강화, 콘텐츠 플랫폼 확충, 업무용 고급 디스플레이 및 오디오 기술의 연계 강화, 주요 시장별 범정부 차원의 수출 촉진 체제 강화 등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