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세 대신 주식시장 활성화 선택한 이재명정부, 왜?
겨우 위기극복 문턱 들어선 한국경제, 시장활성화 정책 불가피
공평과세·응능부담 원칙 ‘흔들’ … 일부 안팎 반발기류 큰 부담
이재명정부가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정부안인 35%보다 완화해 25%로 낮추기로 했다. 부자감세 논란을 감수하고 주식시장 활성화를 선택한 셈이다.
이른바 진보정권의 최대덕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기회제공이었다. 조세분야에선 조세형평성 강화와 부의 불평등 완화를 강조해왔다. 윤석열정부 당시 이재명 대표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목소리를 높인 대목도 ‘부자감세를 멈추라’는 것이었다.
그랬던 이재명 대통령이 ‘부자감세 논란’을 자초하는 정책을 꺼내들었다.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 출신인 이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변절한 것일까. 아니면 무슨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아직 한국경제는 복합위기 와중” = 정부 관계자들은 “2025년 11월 현재 한국경제의 상황이 ‘배당소득 분리과세 완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정부 핵심관계자는 10일 “최근 소비도 개선되고 수출도 나아졌다지만 아직 한국경제는 복합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실제 12.3 내란사태 이후 한국경제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했다. 장기 내수침체에 시달리던 국내시장은 정치불확실성에 더 위축됐다. 환율은 급등하고 갓출범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폭탄’ 예고까지 겹치면서 대외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이 때문에 “2025년 한국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6개월 전 출범한 새정부가 여러 논란에도 소비쿠폰 등 재정역할을 높이고, 대내외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끝에 이제 막 우리 경제가 안정세를 찾아가는 중”이라며 “그래도 한국경제가 직면했던 복합위기를 벗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정책을 내놓게 되면 모처럼 안정세를 찾아가던 한국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면서 “복합위기 와중의 한국경제 현실이 이런 정책적 선택을 불가피하게 하지 않았겠느냐”고 추론했다.
◆주식시장 상황도 한 몫 = 정부가 정책 방향을 급선회한 배경에는 최근 하락세인 증권시장 사정도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일 코스피는 1.81% 하락하며 3953.76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4000선을 넘어선 지 10거래일 만에 3000선으로 후퇴한 것이다. 지난 한 주간 외국인은 7조2638억원을 순매도해 주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순매도액이 각각 3조7151억원, 1조5029억원에 달했다.
뉴욕 나스닥지수(-3.04%)와 일본 닛케이지수(-4.07%) 등 주요시장도 동반약세를 보이며 인공지능(AI) 거품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투자자들의 위험도 커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빚투’(빚내서 투자)로 불리는 신용공여 잔고는 지난 6일 25조8782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당소득 분리과세 정부안 강행’이 확정되면 증시 하락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정책판단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지난 7월말 정부안을 확정할 당시 주식시장이 급락했던 경험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에 대해 정부가 시장 기대와 다른 수위로 추진하자 지난 8월 1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88% 하락한 3119.41에 마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정이 배당소득 분리과세 완화를 추진하기로 한 소식이 알려진 증시거래 첫날인 이날 오전 은행 등 금융주 주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분 현재 KB금융은 전 거래일 대비 5.17% 오른 13만100원에 거래 중이다. 하나금융지주(5.33%)와 신한지주(5.17%) 등도 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증권(5.31%)과 NH투자증권(5.12%)을 비롯한 증권주도 강세다. 은행 등 금융주는 대표적인 고배당주로 꼽힌다. 부자감세 논란을 감수하더라도 ‘당장의 시장안정’이 더 시급하다고 본 정부로서는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조세소위 논의 주목 = 하지만 이재명정부 첫 세법개정안에서 강조된 ‘공정과세·응능부담 원칙’이 후퇴했다는 비판은 큰 부담이다. 실제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지금도 상위 10%가 전체 배당소득의 91.2%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연간 2000만원까지 발생한 금융소득(배당·이자)에는 14%, 2000만원을 초과한 금융소득에는 최고 45%의 세율을 적용한다. 여기서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25%로 더 낮추면 감세혜택이 상위 10%에 더 집중돼 자산격차를 키울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현시점에서 ‘초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당정이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종목당 10억원에서 50억원 보유로 되돌린 결정에 대해서도 진 의원은 “정책적 일관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가 기준을 50억원으로 완화했을 때 ‘부자 감세’라며 반대했던 민주당이 여당이 되자 입장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조세소위 논의 과정이 예상보다 팽팽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감세효과 대부분이 고소득자에 집중돼 조세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아서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도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놓고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세제 측면의 보완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